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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견제 받지 않는 언론권력, 사회의 희망마저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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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견제 받지 않는 언론권력, 사회의 희망마저 꺾는다

입력
2009.07.0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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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지현이 일본 아사히TV 뉴스에 직접 출연한 적이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일본 상영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아사히TV '뉴스 스테이션'의 앵커였던 구메 히로시가 친근감을 드러내려 전지현의 머리를 몇 번 쳤다.

'뉴스 스테이션'과 구메 히로시가 그때부터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본 텔레비전 뉴스의 '엽기성'도 널리 회자됐다.

구메 히로시는 '뉴스 스테이션'을 무려 18년 동안이나 진행했다. 2004년 은퇴하기 전까지 그는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킨 뉴스 앵커였다. 밤 10시 시간대를 두고 경쟁하던 NHK 뉴스가 밤 9시로 도주 편성을 할 정도였다. NHK를 제외한 모든 민방들이 '뉴스 스테이션'을 TV 뉴스의 전형으로 삼을 정도였을 만큼 그는 일본 TV 뉴스의 '레전드'였다.

아나운서 출신인 구메 히로시는 뉴스의 엄숙함을 떨치는 데 혼신을 다했다. 전지현을 뉴스 생방송 현장에 불렀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지 않은가. 그가 마지막 방송에서 스스로에게 포상한다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음은 파격의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

연예인 출신들이 일본 민방의 뉴스 진행을 이끌고 있음을 볼 때 대중에게 다가가려던 그의 시도는 아직 지속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구메 히로시 효과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인기의 정점에 섰던 때는 1990년대였다. 55년 체제의 산실인 일본 주류 세력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구메 히로시는 무너져가던 일본 주류 세력을 공격하는 데 주력했다. 자민당, 대기업, 정부 관료로 꾸려진 삼각동맹, 즉 주류 세력을 때려댔다. 거품경제가 막을 올리면서 우울해하던 일본 사회에 카타르시스를 전해줄 테마를 절묘하게 찾아냈던 셈이다.

아사히 텔레비전의 '뉴스 스테이션'이 주류 세력을 공격하고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아사히신문 등과 같은 일본의 주류 언론이 주류 세력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일본의 주류 신문들은 그 세력을 감시하기는커녕 촉매 역할을 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같은 뿌리에서 나온 아사히 텔레비전이 그 동맹을 공격하고, 카타르시스를 전했으니 병 주고 약 주고 한 꼴이 아닐 수 없다.

아사히 텔레비전의 구메 히로시와 '뉴스 스테이션'이 자매였던 아사히신문과 행보를 달리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구메 히로시는 철저하게 대중추수주의를 택했다. 거품경제로 어려워진 시민들의 울분을 달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때리고, 까고, 부수는 일을 시원스럽게 해냈다. 그리고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왜 삼각동맹이 있었는지, 그로 인해 일본 사회가 얼마나 황폐해졌는지를 말하는 친절함까진 베풀지 않았다.

구메 히로시가 만들어 제공한 카타르시스는 일본 사회에 독이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시원시원한 공격으로 시민의 갈증을 씻어주었지만 시민의 손엔 냉소주의 외에 남은 것이 없었다. 냉소주의는 정치를 더더욱 멀리하게 만들었다. 사회를 고칠 희망을 죽이는 독이 되기도 했다. 구메 히로시와 '뉴스 스테이션'의 성공은 일본 시민사회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전지현의 머리를 쳤다는 사실 말고 우리가 구메 히로시의 인기를 통해 배워야 할 부분들은 없을까. 정치, 경제권력 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권력은 끄떡없다는 사실, 그것이 첫 번째 배움일 거다.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경우엔 더더욱 그러할 거라는 사실을 꼭 알아두자.

견제 받지 않는 언론권력은 언제나 염치없음도 기억해두자.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안면을 바꾸는 몰염치를 알아두자. 무엇보다 견제 받지 않는 언론권력은 사회의 희망마저 빼앗아갈 수 있음을 아사히 계열의 언론을 통해 익혀두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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