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 대운하 포기' 선언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운하 의혹'의 족쇄를 벗겨줌으로써 사업에 가속을 붙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미리 치밀한 구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단히 전략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2008년 6월29일 특별기자회견)고 애매한 말을 한 뒤, 아무리 '포기 선언'을 하라고 다그쳐도 1년 넘게 꿈쩍도 않던 그가 갑자기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 사이 '4대강 살리기'로 포장된 이 사업의 논점은 '대운하냐, 아니냐'로 모아졌다. 말하자면, 지난 1년 동안의 논란은 '대운하는 안되지만, 4대강 사업이라면 괜찮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는 과정이었다. 그 논란에 밀려 4대강 사업의 환경문제나 경제성 논란 등 정작 본질적인 논점들은 묻히거나 힘을 잃었다. 대운하에 반대했
던 상당수 국민들도 4대강 사업에는 찬성하거나 적극 반대하지 않는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정점에 이르고, 사업계획이 구체화한 이 시점에 이 대통령은 회심의 한 방을 날림으로써 대운하 의혹을 제기해온 반대론자들을 머쓱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반대세력은 2007년 대선 때 BBK사건에서처럼 전략적으로 또 한번 실패를 맛볼 것 같다. 대선 당시 이 후보의 온갖 비리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쟁자였던 현 야당세력은 BBK의혹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다른 비리 쟁점들은 그 바람에 모두 묻혔다. 그 중에는 BBK의혹보다 더 본질적인, 이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법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든 '증인도피 의혹' 같은 것이 있었다.
선거를 코 앞에 두고 검찰은 이 후보의 BBK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고, 그는 의혹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국민의 모든 관심이 검찰의 BBK 수사결과에 쏠려있고 검찰이 최종 심판관 노릇을 하게 된 마당에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뒤에 다른 의혹을 제기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분위기였다. 반대세력으로선 치명적인 전략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논점을 단일화해 그 논점을 해소함으로써 다른 논란을 잠재우는 '일점돌파' 전략에 당한 셈인데, 이 점에서 BBK사건과 4대강 사업의 논쟁 전개과정은 닮아있다.
정부는 이제 승기를 잡은 듯이 대대적인 홍보전에 나섰다. 이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됐다는 '대한 늬우스' 홍보물이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일선 학교에는 교육청의 '4대강 살리기' 홍보계획 지침이 내려졌다고 한다. 환경이나 경제성 논란이나 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니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리라는 내용이다. 공무원들은 대국민 홍보에 나서도록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이미 모든 비판에 귀를 막았다.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무지의 소산이거나 정치적 반대이니,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해소하거나 무시하면 그만이다. 사업 추진도 졸속의 흔적이 뚜렷한데, 정책홍보 또한 관료주의와 동원체제의 냄새가 물씬 난다.
포장은 내용이 뒷받침될 때 의미가 있다. 발표할 때마다 계획이 바뀌고 예산이 몇 조원씩 불어나는 졸속 사업을 그럴듯하게 일방적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국민이 얼마나 수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저 천문학적인 돈으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의도 말고는 달리 읽히지 않는다. 오해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확인되겠지만, 이 사업의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당장 장담할 수 있다.
김상철 사회부 차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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