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물가에서 그대 만났으니
축생을 쌓던 모래 다 허물어 이 시계 밖으로
이제 그대 돌려보낸다
바닷가 황혼녘에 지펴지는 다비식의
장엄함이란, 수평을 둥글게 껴안고 넘어가는
꽃수레에서 수만 꽃송이들이 한번 활짝 피었다 진다
몰래몰래 스며와 하루치의 햇빛으로 가득 차던
경계 이쪽이 수평 저편으로 갑자기 무너져 내릴 때,
채색 세상 이미 뿌옇게 지워져 있거나
끝없는 영원 열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내 사랑, 그때 그대로 한 줌 재로 사함받고
나지막한 연기 높이로만 흩어지는 것이라면
이제, 사라짐의 모든 형용으로 헛된
불멸 가르리라
그대가 나였던가, 바닷가에서는
비로소 노을이 밝혀드는 황홀한 축제 한창이다
● 사실 소멸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없어진다는 것은 아프고 막막한 일이다. 누가 아무리 좋은 말과 아름다운 언어로 위로를 해주어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없어진다는 그 사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소멸한다는 것도 '수평을 둥글게 껴안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그 순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수레에서 수만 꽃송이들' 한번 활짝 피었다가 지는 순간. 그 순간이 너무나 아름답기에 거짓 불멸을 꿈꾸지 안고 소멸을 소멸로 인정하는 일은 아프다.
'끝없는 영원'은 '열려다 다시 주저앉는다'고 시인은 우리에게 들려준다. 영원을 믿지 않는 그 순간도 저렇게 황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삶이 그나마도 누추하지 않는 건, 소멸의 순간을 저렇게 아름답게 해독해 내는 인간의 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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