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서랍의 동전 칸엔 작년 가을부터 긴 머리카락 십수 올이 돌돌 말린 채 들어 있다. 큰애에게 느닷없는 전화가 걸려왔을 때에도 학교 폭력이란 남의 일인 줄만 알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아이는 빨리 지도부로 와달라고 외쳤다. "엄마, 나 밟혔어." 아이들 사이에 사용되는 그 용어를 한번에 알아들었다.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갔다. 지도부의 이쪽과 저쪽 끝에 두 아이가 대치하듯 앉아 있었다.
두 아이의 머리카락은 엉클어졌고 아이들은 무슨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뽑힌 머리카락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뽑힌 머리카락 올 수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큰애의 교복에는 상대편 아이의 운동화 발자국이 나 있었다. 상대편 아이는 또래에 비해 비교적 작은 우리 아이보다도 몸집이 작았다. 선생님은 학생 수가 너무 많고 아이들도 예전과 같지 않아 힘이 든다며 처벌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원한 건 그 아이의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였다. 아이들은 지도부 밖에서도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 새벽 아이는 잠이 들었지만 나는 오랫동안 깨어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더이상 네 일이 아닌 일에는 끼어들지 말라고 말했다. 왜 폭력을 썼느냐고 상대편 그 아이를 혼내지도 못했다. 나는 무엇이 두려웠을까. 서랍 속의 돌돌 말린 아이의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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