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하고 객관적인, 그래서 아름다움과 전혀 상관이 없을 법한 과학 실험도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뉴욕 주립대에서 과학철학과 미학을 연구하는 로버트 P. 크리즈 교수의 답은 "그렇다"이다. 그는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쓴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10가지> 에서 아름다운 실험의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드러내되 단순할 것, 세상의 신비에 새로운 의문을 제기할 것 등이다. 기원전 2세기 그리스 과학자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둘레 측정에서 20세기 후반 '단독 전자의 양자적 간섭' 실험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0가지 실험'은 세 조건을 모두 갖췄다. 세상에서>
▦ 과학실험은 아니지만 또 하나의 아름다운 실험을 소개한 책이 최근 출간됐다.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김수종 지음ㆍ희망제작소 시대의창 발행)이다. 아름다운 과학실험이 도전적 사고의 산물이듯 인터넷 벤처기업 '다음'이 본사를 한라산 기슭으로 옮긴 것은 큰 도전이었다. '서울을 벗어나려는 어떤 움직임도 중앙의 만유인력에 보복을 당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사회의 고질적 문제 대부분은 서울ㆍ수도권 집중에 그 뿌리가 있다. 서울 중심주의를 거부하고 바다 건너 제주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다음의 도전은 그래서 선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기업이 선의로만 생존할 수는 없다. 다음의>
▦ 제주출신 언론인인 저자가 다음을 '제주도 역사상 가장 반가운 손님'이라고 반기면서도 선한 의도를 넘어선 그 무엇을 집중 추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창업자와 신입사원, 제주도 기업유치 담당자, 다음의 제주프로젝트 담당자등 수많은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많은 가능성을 확인하다. 지난해 촛불시위 정국에서 사이버 토론의 중심이 됐던 '아고라', 또다른 인터넷 서비스 '세계인'과 'UCC'가 제주에서 탄생했다. 저자는 제주도에 사무실 하나를 짓고 180명의 인력을 서울에서 데려와 거둔 성취와 고용효과를 주목하며 '지식노동자가 머무는 하이테크 섬'을 꿈꾼다.
▦ 저자의 말대로 수도권 집중으로 국가의 균형발전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다음의 실험은 조그만 희망의 숨구멍과 같은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인위적 균형발전책도 필요하지만 한 벤처기업의 자발적 도전이 성공한다면 본보기로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2004년에 시작된 다음의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이다.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자신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이지만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고 도울 것은 도와야 한다. 기업의 의지와 별개인 '아고라'의 정치적 득실이 이 실험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 특정 기업이나 정파의 이익을 떠나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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