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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레인'

입력
2009.06.2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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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 외출했다가 불청객과도 같은 소나기와 마주칠 때가 있다. 작은 우산 하나 챙기지 않은 자신의 부주의가 실망스럽고, 예측을 빗나간 일기예보가 원망스럽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의, 비에 젖은 옷과 머리는 또 얼마나 민망한지….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 스타일이야 조금 구겨졌다고 하지만 상쾌한 자연의 세례를 뜻하지 않게 받게 되었다고 말이다.

프랑스 영화 '레인'을 보고 있자면 촉촉한 미소가 번진다. 예기치 않은 인생의 '비'와 맞닥뜨린 주인공들이 당황하며 비를 원망하다가 비의 가르침을 깨닫는 과정이 가슴을 적신다.

이야기의 진폭은 크지 않다. 정치인 입문을 위해 고향을 찾은 유명 작가 아가테(아네스 자우이)와 그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찍고자 하는 미셸(장 피에르 바크리), 카림(자멜 드부즈) 등의 엇갈린 시선과 소소한 갈등이 극을 전진시킨다.

페미니스트로 진보적인 시각을 지녔지만 아랍계 카림의 어머니를 식모로 두었던 아가테는 미셸, 카림과의 불편한 만남을 통해 대의에 충실했으나 주변에는 무관심했던 자신의 '들보'를 보게 된다. 남성우월주의자인 미셸도, 사회적 약자라는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카림도 아가테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들이 외면하고 싶었거나 깨닫지 못했던 허물을 들여다본다.

세 사람에게는 서로가 인생에서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비였던 셈. 비록 세 사람이 만들고자 했던 다큐멘터리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촬영을 마치지만 그들은 더욱 깊어진 인간관계와 정신적 성숙을 얻는다.

요컨대 '레인'은 우리 인생은 언제나 화창할 수 없는 법이라고, 햇볕 아래서 깨닫지 못한 삶의 비의를 비를 통해서라면 깨달을 수 있는 법이라고 웅변한다.

'타인의 취향'과 '룩 앳 미'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아네스 자우이는 별일 없는 듯한 일상에서 특별한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재기를 선보인다. 비를 소재로 한 영화치고 눅눅하기는커녕 이렇게 쾌적한 느낌이 드는 영화가 또 있을까. 영어 제목은 'Let It Rain'. 이만큼의 미소와 삶의 성찰을 가져올 비라면 언제든지 내리도록 하고 싶다. 7월 9일 개봉.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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