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이 자금난 해소를 위해 대우건설을 되팔기로 하면서 인수ㆍ합병(M&A)시장이 되서리를 맞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 굵직한 매각 기업들이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대우건설까지 시장에 나오면서 '매물 적체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마치 아파트 미분양 사태를 보는 듯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매물은 갈수록 쌓이는 반면 매수자는 꼼짝도 하지 않고 호가마저 떨어지며 M&A시장은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지금 상황이라면 결국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갈 공산이 커, 또다시 국부유출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 대어급 M&A 거래가 뚝 끊겼다.
한 때 초대형 M&A는 '재계 TOP10으로 가는 지름길'로 불리며 중견그룹의 각축전의 대상이 돼 왔지만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런 인식은 180도 바뀌었다. 대표적인 것이 대우조선해양 매각 건. 지난해 입찰 당시 한화가 6조원이 넘는 거액에 인수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최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후 자금난을 이유로 인수를 포기하고 말았다.
동국제강도 알짜 건설사인 쌍용건설을 위해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해 놓고 시장상황을 이유로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자칫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최근에도 현대중공업이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하려 했지만 채권단이 가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각을 포기해 불발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초대형 M&A물건은 매각 일정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외환은행 등 채권단이 매각주관사를 선정하고 올해 9월까지 매각을 완료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매수자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현대건설과 대우조선행양의 경우는 아직 구체적인 매각 계획조차 내놓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현대건설은 대우건설까지 시장에 나오면서 사실상 매각이 무기한 연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채권단 입장에서는 그 동안 유지비용을 감안해 손해를 보고 팔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매각을 보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해외 사모펀드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 커
현재 M&A시장에서 최대 난제는 국내의 큰 손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공개매각 하겠다고 선언한 후 인수 후보로 거론된 그룹들은 일제히 "근거 없는 얘기다"고 일축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 등 초대형 매물을 살 수 있는 매수자는 5대 그룹 정도로 한정돼 있다"며 "하지만 이들 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감안한다면 매력적인 인수대상이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매물을 싹쓸이 해 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최근들어 매매 차익을 노린 해외 사모펀드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세계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은 이미 국민연금과 공동을 펀드설립하기로 하며 M&A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고, 조지 소로즈의 퀀텀펀드도 금호생명 인수전에 참가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세계2위 규모의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츠로버츠(KKR)은 이미 18억달러에 오비맥주를 인수하고, 산업은행과 제휴를 맺어 M&A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외국계 금융권에선 이미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또 하나의 큰 장(場)이 섰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M&A를 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해외 사모펀드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다만 매각 기업들이 대부분 국가기간 산업이어서 국부 유출 논란이 일 수 있는 만큼 실제 M&A가 성사되기는 상당한 논란과 시간이 뒤따를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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