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0시30분 경기 화성시 백미리 옛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터. 꼭 10년 전 천진난만한 유치원생 19명이 화마(火魔)에 목숨을 잃은 참사의 현장을 유족 10여명이 찾았다. 잡초만 무성한 사고 현장에 하얀 제단이 차려지고 그 위에 희생된 아이들의 영정이 놓였다. 유족들은 묵념 하고 헌화 하며 눈물을 떨궜다. 10년 만에 처음 열린 합동 위령제였다.
1999년 6월30일 오전 1시께 당시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에 불길이 타올랐다. 컨테이너를 쌓아올려 만든 3층짜리 건물에는 스티로폼 내장재가 덧대어져 있어 불은 유독가스를 내며 순식간에 번졌다. 단잠에 빠져있던 아이들 19명과 교사 4명 등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련원이 있던 곳은 황량한 공터로 남아있다. 불탄 건물은 철거됐지만 사유지인 탓에 화재에 희생된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작은 위령비조차 세우지 못했다.
당시 여섯살배기 아들을 잃은 뒤 다른 유가족과 함께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만든 이경희(55)씨는 "(참사 현장이) 개발로 사라지기 전에 찾아 영정에 꽃이라도 한 송이 놓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일곱 살 아들 형민이를 잃은 신현숙(44ㆍ여)씨는 "1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아들에게) 저녁인사 한 번 빠뜨린 적 없다"며 흐느꼈다.
행사에 참석한 최영근 화성시장은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유족들이 요청하면 추모공원 조성 등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른 아침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위령제가 끝난 이후에도 쉽게 발길을 옮기지 못한 채 한동안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유족들은 이어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 파크텔에서 개최한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 그 후 어린이 안전문화 10년'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위령제에 참석하지 못한 고석(47)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도 참석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고 대표 역시 당시 사고로 여섯 살 쌍둥이 딸을 잃고 재단 설립에 뛰어들었다. 사고 이후 유족들이 받은 보상금을 모아 설립한 어린이안전재단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생활안전 및 교통안전 교육과 선진 안전문화 정착을 위한 연구개발 사업 등을 펼쳐왔다.
세미나에서는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청소년 수련시설이 여전히 안전 사고에 취약한 것으로 지적됐다. 첫 주제 발표를 한 한국청소년시설환경학회 유진이 회장은 "1990년대 이후 청소년수련시설은 양적으로 팽창했으나 질적인 개선은 더딘 상태"라고 지적했다.
유 회장은 "씨랜드 참사 이후에도 일부 민간 수련원은 여전히 가연성 건축재를 사용하고 있고 전기배선이 불량하거나 소방설비가 미흡한 곳도 많다"며 "청소년 시설은 설계단계부터 안전에 중점을 둬야 해 정부의 대책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도 "우리나라는 사고가 나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법을 마련한다"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정책과 법이 마련돼야 선진국 문에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안전재단은 참사 당일인 30일 송파구 마천동 재단 사무실에서 참사 10주기 공식 추모식을 열 예정이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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