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에서 28일 쿠데타가 발생해 반미 성향의 마누엘 셀라야(56) 대통령이 이웃 코스타리카로 추방됐다. 중미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것은 26년 만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빈발했던 중미 쿠데타의 전형적인 모습은 빈민층의 지지를 업고 정권을 잡은 반미ㆍ좌파 성향 대통령을 부유층 및 다국적자본의 지지와 미국의 암묵적 승인 하에 군부가 무력으로 축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는 과거의 전형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달라진 미국의 대응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의 태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온두라스의 모든 정치, 사회 주체들은 민주주의 규범과 법치, 미주민주주의헌장 등을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셀라야 대통령을 온두라스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그 외에 대통령은 없다고 강조했다.
중미에서 미국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며 역사적으로 미국과 유대관계에 있던 온두라스 군부를 미국이 이토록 신속하게 반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온두라스의 소토 카노 공군기지에는 지금도 550~6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은 또 마약 소탕 작전 등을 온두라스 군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정부가 쿠데타 반대 입장을 신속하게 밝힌 것이 2002년 '2일 천하'로 막을 내린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축출 쿠데타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즉시 환영한 것과 대비된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의 반응을 의식한 듯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온두라스 쿠데타와 관련해 "미국이 개입했다"고 비난했지만 미국이 반 쿠데타 입장을 보이면서 더 이상의 갈등으로는 비화하지 않고 있다.
케빈 카사스 사모라 전 코스타리카 부통령은 "오바마 정부가 미국이 지지하지 않는 정권이라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우선시한다는 분명한 태도를 과시할 수 있는 황금의 기회를 얻게 됐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무리한 집권연장 시도로 사면초가
2006년 당선된 셀라야 대통령이 내년 초 4년 단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 국민투표를 밀어붙이다 '고립'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점도 과거 쿠데타와 다르다.
대법원이 이 달 초 국민투표가 불법이라고 판결하자 군부는 이를 근거로 셀라야 대통령의 선거 준비를 거부했다. 셀라야 대통령은 이에 로메오 바스케스 참모총장 해임을 시도하는 등 군부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선거 당일인 28일 새벽 군부에 의해 추방됐다.
쿠데타 직후 의회는 셀라야 대통령을 탄핵하고 로베르토 미첼레티 의회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대법원도 임시 대통령을 즉시 승인했다. 사법부, 의회 모두 쿠데타를 지지한 것이다. 셀라야 대통령은 경제난으로 지지도가 30%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셀라야 대통령은 "불법 납치극"이라며 지지자들의 평화적 저항을 촉구했다. 셀라야 대통령은 29일 차베스 대통령 등 좌파 지도자들과 만나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셀라야 대통령이 쫓겨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온두라스 대통령궁 앞에서는 약 2,000명의 친 셀라야 시위대가 농성했다. 일부는 삽, 쇠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채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목장주 출신인 셀라야 대통령은 우파의 지지를 바탕으로 집권했지만 이후 차베스 대통령과 유대를 강화하며 좌파로 선회했다.
■ 온두라스 어떤 나라
면적 - 11만2,492㎢(남한보다 약간 큼)
수도 - 테구시갈파
인구 - 750만명
1인당 국민소득 - 1,842달러(2008년) 전국민의 80%가 빈민층
주요 생산품 - 커피, 바나나, 섬유 *국내총생산의 25%가 해외 이주노동자의 송금
한국과 교역액 - 연간 2억달러(2007년말 기준)
한국 교민 - 600여명
정영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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