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자율형 사립고(자율고) 지정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이주호 교과부 1차관은 26일 호남대에서 열린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정기총회에서 "내년에 자율고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올해는 당초 기준대로 가겠다"고 밝혔다.
이 차관의 발언은 사립고 재단이 등록금의 3~5%를 출연하도록 한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명박 정부 수월성 교육의 상징인 자율고호가 출항의 닻을 올리기도 전에 수리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자율고 지정 요건 완화는 교과부의 현실 진단과 인식이 얼마나 안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율고는 정부의 재정결함 보조금을 받지 않지만 일반고보다 3배 이상 많은 등록금을 받는다. 대신 교과 편성 자율권이 확대된다. 문제는 등록금의 3~5%를 전입금으로 낼 수 있는 사립고 재단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자율고 전환 신청 접수 전부터 제기된 문제인데도 교과부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그 결과 30곳을 지정키로 한 올해, 일반계 사립고 667곳 중 고작 44곳만 자율고 전환을 신청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등록금 대비 전입금 비율이 1% 미만이었다.
교과부는 2012년까지 자율고 100곳을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목표 달성을 위해 재단 전입금 비율을 낮추면 학부모 학생 부담이 가중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재정력이 떨어지는 사립고를 당초 기준을 완화하면서까지 억지로 자율고로 지정하면 부실 지정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자율고가 정부 주장대로 공교육의 다양화와 경쟁을 통한 사교육 억제 효과를 거둘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오히려 외국어고 과학고처럼 또 다른 형태의 '입시 명문고'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그렇다면 교과부는 무작정 자율고 지정 확대에만 몰두할 게 아니다. 기준을 충족하는 몇 학교만 지정, 운영하면서 순기능과 역기능을 면밀히 분석해 대책을 세우는 게 우선이다. 추첨형 선발 방식 개선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자율고 확대 지정 여부는 물론, 몇 개 학교를 자율고로 운영할지는 그 다음 결정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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