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태가 진정된 모양이다. 선거부정 논란을 둘러싼 민중시위가 '혁명'으로 치닫는 듯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진전이다. 1979년 회교 혁명이래 가장 거대한 민중 항거라고 지레 흥분한 쪽에서는 실망하거나 머쓱할 법하다. 어디서든 민중혁명 얘기만 나오면 들뜨는 우리사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우리 언론은 그런대로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강고한 신정(神政)체제를 뒤엎는 민중혁명 가능성을 회의한 때문일까. 서구 언론의 섣부른 관측을 습관처럼 뒤좇다 시위와 진압이 대규모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자 관망자세로 돌아서는 모습도 보였다.
'민주ㆍ반민주' 틀에 얽매여
그러나 민주와 반민주, 선과 악 등의 이분법적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사태의 실체는 모호해진 느낌이다. 혼란을 정리하려면 선거 과정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투표 전 "선거전이 어느 때보다 민주선거를 닮았다"는 외부 논평이 눈에 띄었다. 각기 다른 계층과 이익과 정책을 대변하는 후보가 맞서고, 정치사회 세력이 뚜렷이 갈려 다투는 모습이 민주주의의 획기적 진전을 상징한다는 평가였다.
현직 대통령 아마디네자드는 회교 원리와 반 외세, 빈곤퇴치, 사회적 약자 보호를 내세웠다. 무사비 전 총리는 엄격한 회교통제 완화와 고립 탈피, 시장경제, 기업ㆍ언론 민영화를 표방했다. 핵개발은 모두 지지했다. 또 아마디네자드는 도시 빈곤층과 지방 유권자, 연금생활자, 공무원 집단 등의 지지를 받은 데 비해 무사비는 도시 중상류 층과 기업ㆍ상공인 및 고학력 여성 등이 지지기반이었다.
선거전 양상도 '회교 독재' 인식과 거리 멀다. 두 후보는 선거비용으로 수천만 달러씩을 썼다. 유세기간에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하루 5,000만 건이나 증가한 사실도 민주적 선거의 징표이다. 성직자와 법률가로 구성된 선거관리기구, 헌법수호위원회가 출마희망자 476명을 심사해 4명만 허가한 독특한 선거제도를 비민주적이라고 규정할 것도 아니다.
어쨌든 개표부정 의혹이 있고 민중시위를 강경 진압한 사태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이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의혹을 뒷받침하는 뚜렷한 증거부터 없다. 무사비 후보와 서구 언론은 무사비가 여론조사에서 앞선 점에 비춰 아마디네자드가 득표율 63%대 34%로 압승한 결과는 터무니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란 언론의 숱한 여론조사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데다 조사방법 등도 제시하지 않아 전혀 신뢰성이 없다.
유일하게 객관적인 미국 '테러 없는 미래: 여론센터'의 조사는 '34 대 14'로 아마디네자드 우세를 점쳤다. 조사를 맡은 켄 볼렌은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아마디네자드가 2005년보다 훨씬 많은 표를 얻은 것은 투표율이 85%에 이른 때문이고, 지역별 득표율은 지난 선거와 거의 같다며 의혹의 맹점을 지적했다. 이런 객관적 분석에 따르면 유권자보다 투표자가 많은 지역이 수십 곳이라는 의혹도 왜곡됐다. 유권자 등록지가 아닌 곳에서도 투표할 수 있고, 문제된 지역은 모두 휴가철에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다. 워싱턴포스트>
아제르 소수민족 출신 무사비가 고향에서도 참패한 것을 부각시키지만, 아제르 지역은 역대 선거에서 아제르 출신의 득표율이 10% 선에 그쳤다. 다른 잡다한 의혹도 야당 참관인이 4만 명이 넘는 점 등에 비춰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편견ㆍ 도그마 벗어난 시각
이란 정치와 선거가 서구 민주주의 기준에 근접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외세가 강요한 전제 왕정을 타도한 민중혁명을 이룬지 30년에 불과한 사실 등을 고려하면, 선거 논란과 시위와 진압 양상은 일반적 인식보다 훨씬 민주적 사회임을 일깨운다. 복잡한 정치경제적 이해가 얽힌 서구의 시각을 벗어나야만 이란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의 현실과 고뇌와 진로를 바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전혀 상반된 편견과 도그마에 얽매인 탓에 민중시위와 마주치기만 하면 분별력을 잃고 안개 속을 헤매기 일쑤다. 언론부터 나라 안팎을 보는 시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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