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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아동들에게 3년째 직접 만든 원목 가구 선물하는 서정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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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아동들에게 3년째 직접 만든 원목 가구 선물하는 서정식씨

입력
2009.06.2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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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와 문경의 경계에 솟은 작약산(높이 738m). 산봉우리가 활짝 핀 작약처럼 아름답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쓰싹쓰싹~ 타당타당!" 27일 상주시 은척면 장암리 작약산 중턱에 대패질과 망치질 소리가 짝을 이뤄 경쾌한 노래처럼 울려 퍼졌다. 소리의 주인공은 소외 아동들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어주는 서정식(54)씨.

비닐하우스 작업장에 들어서자, 서씨는 이마에 송글송글 땀을 달고 의자를 만들고 있었다. 잠시 작업을 멈춘 그는 사각 나무 필통을 꺼내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들한테 가구 만들어줄 때 같이 주려고 만들어봤는데 보기에 괜찮나요? 요즘 아이들이 이런 필통을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이곳은 서씨가 노후 생활의 터전으로 마련한 것. 기자 출신으로 현재 라디오에서 뉴스 해설을 하고 있는 그는 지난 2월 영등포에 있던 작업장부터 옮겨놓고 주말마다 걸음을 하고 있다. 그는 흔히 말하는 'DIY(Do It Yourself)족'이다.

6년 전 취미로 가구 만들기를 배웠는데, 이제는 '나눔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에서 가구와 생활용품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2년 전. 그 후 굿네이버스 용인지부에서 운영하는 소외계층 어린이집에 책꽂이와 책상, 의자, 벤치 등 10여점의 가구를 선물했다.

디자인에서 제작까지 혼자 하다 보니, 가구 하나를 만드는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이 걸린다. 그래서 마음만큼 많은 선물을 전하지는 못했다.

"사실 이렇게 만들어 주는 게 비효율적인 면도 있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기성 제품이나 쓰던 제품보다 제가 더 잘 만드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남 쓰던 것 말고 새 것, 그들만을 위해 맞춤 제작한 걸 주고 싶었어요."

서씨가 '직접 제작'을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이들의 건강이다. "기성제품은 합판 위주로 만들어지고 접착제가 많이 사용돼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물질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 가구만큼은 원목을 고집하고, 부득이하게 접착제를 사용할 때도 천연재료를 쓴다. 이러다 보니 시중 제품보다 비용도 많이 든다. 하지만 서씨는 "가구를 사용할 아이들이 내 자녀라고 생각하면 '적당히' 좋은 것보단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서씨는 조금이라도 솜씨 좋은 가구를 만들기 위해 전문 서적을 구입해 디자인을 연구한다. 이런 노력은 지난해 아이들에게 선물한 벤치에서 빛을 봤다.

개구쟁이들이 사용하니까 튼튼하게, 마감 처리는 부드럽게 하는 건 당연지사, 여기에 운동기구를 보관할 수 있는 수납공간까지 넣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그러나 높이를 아이들 키에 맞추면서 수납 공간을 넣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마트에 가서 농구공, 축구공 크기를 재보고 연구한 끝에 욕심을 충족한 벤치를 만들었다. 서씨는 "원래는 수납장에 풍선과 초콜릿, 사탕을 가득 채워주려고 했는데, 마지막 날까지 작업하느라 이벤트를 준비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고마움 마음을 가득 담아 편지를 보내왔다. 서씨는 아이들이 그가 만들어 보낸 가구를 배경으로 멋지게 포즈를 취한 사진과 함께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저씨 감사합니다'라고 적은 편지를 작업장 한 켠에 놓아두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서 여름캠프도 열 계획이다. 주말마다 작업장을 오가며 공터에 텃밭을 일군 것도 그 때문이다. 애써 심고 가꾼 보람이 있어 실하게 자란 고구마, 옥수수 등은 8월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속리산도 가깝고 바로 뒤 작약산도 있어 체험학습 공간으로 안성맞춤이에요. 아이들도 좋아하겠죠?" 텃밭을 둘러보던 그의 얼굴엔 벌써 작약꽃처럼 넉넉한 미소가 번졌다.

상주=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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