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다. 이창호가 또 준우승에 머물렀다. 최근 4년간 무려 일곱 번째다. 이창호는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벌어진 제7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3번기 제2국에서 중국의 창하오에게 불계패, 종합 전적 0대2로 우승컵을 놓쳤다.
이 날 이창호는 중반 무렵까지 상당히 우세했으나 전투 중에 어이없는 수읽기 착각을 하는 바람에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창호는 이틀 전 제1국에서도 유리한 바둑에서 역전패했었다.
확실히 이창호가 전 같지 않다. 중반까지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판을 짜나가지만 종반에 접어들면서 체력과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특히 초읽기에 몰리면 돌을 쥔 손이 바둑판 위에서 한참 춤을 추다가 시간에 쫓겨 아슬아슬하게 착수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정확한 형세 판단으로, 다만 반 집이라도 유리하다는 계산서가 나오면 안전하게 바둑을 마무리하는 원동력이었던 정밀함과 침착함이 사라졌다.
물론 그래도 꾸준히 세계 대회 결승에는 올라가고 있으므로 '부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 '번기 승부 필승 신화'에 익숙했던 팬들로서는 계속 정상 일보 직전에서 무너지는 이창호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특히 세계 최강 이세돌이 다음 달부터 휴직을 하게 돼 국내외 공식 기전에 일체 출전치 않게 된 상황에서 이창호마저 이처럼 제 역할을 못해 준다면 올 하반기 한국 바둑계의 앞날은 어둡다.
이로써 이창호는 2005년 3월 춘란배 우승 이후 4년 동안 주요 세계 기전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고 무려 7차례나 준우승에 머물렀다(단, 2007년 마이너 기전인 중환배서 한 번 우승한 적은 있음).
이창호는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첫 타이틀을 딴 이후 지금까지 통산 137회(국제 기전 23회 포함) 우승, 연평균 6.8회꼴로 우승 한 셈이지만 2005년과 2006년에 각 4회, 2007년 3회, 2008년 2회로 그 회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올해는 국내 기전인 바둑왕전에서 딱 한 번 우승했을 뿐이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전자랜드배 왕위 바둑왕 중환배 등 국내외 4관왕. 그렇지만 왕위전과 중환배가 이미 중단된 상태고 전자랜드배 또한 연내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달랑 왕위 하나만 보유했던 지난 2007년과 비슷한 처지로, 입단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한편 창하오는 이번 우승으로 제5회 응씨배(상대 최철한) 제11회 삼성화재배(상대 이창호)에 이어 통산 3번째 세계 타이틀을 차지하게 됐다. 이창호와 창하오는 7월 4일 일본기원에서 열리는 제22회 후지쯔배 준결승전에서 결승 진출권을 놓고 다시 한번 격돌한다.
■ 결승2국 승부처
이창호가 <1도> 1로 젖힌 다음 2 때 3으로 끊었다. 4로 단수 치면 두 점으로 늘려서 죽이는 게 상용 수법이다. 백이 흑 두 점을 따내 봤자, <2도> 1로 먹여친 다음 3, 5로 수를 조여서 얼핏 보기에는 흑이 한 수 빠른 것 같다. (4 … 1의 곳 이음)
그러나 착각이었다. <3도> 1, 3을 선수한 다음 5로 마늘모하는 묘수가 있었다. 6이 불가피할 때 7로 붙이는 게 또 좋은 수여서 백돌이 다 살아 갔다. 이제는 귀의 흑돌까지 위험하게 돼 여기서 사실상 승부가 결정됐다.
사실 <3도> 5가 묘수이기는 하지만 그리 어려운 수는 아니다. 당시 검토실에서는 애당초 이창호가 <1도> 1, 3을 둘 때부터 이미 <3도>까지 진행을 예측하고 '이건 흑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창호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뚜벅뚜벅 망하는 길로 걸어 들어갔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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