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유현목 감독 별세/ '오발탄'이 떨어졌다… 한국 영화 큰 별이 졌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유현목 감독 별세/ '오발탄'이 떨어졌다… 한국 영화 큰 별이 졌다

입력
2009.06.28 23:54
0 0

'오발탄' 등의 작품을 연출한 한국 영화계의 거목 유현목(사진) 감독이 28일 낮 12시30분 경기 고양시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1925년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서 출생한 유 감독은 동국대 국문과 재학시절인 47년 영화동호회를 만들어 단편 '해풍'을 제작했고 56년 영화 '교차로'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90년대까지 40여편의 작품을 만들며 대종상 감독상만 네 차례 받은 그는 한국 영화의 대표적 리얼리스트였다. 76년부터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후진을 길러냈으며 90년 정년퇴임했다.

2007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해온 유 감독은 최근 당뇨합병증이 겹쳐 입원한 상태에서도 "마지막으로 기념비적인 작품 하나 남기고 싶다"고 말하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고 주위에서는 전했다.

분단의 비극과 암울한 현실을 한 가족을 통해 부각시킨 명작 '오발탄'(1961)은 유 감독에게 현실비판적 리얼리스트라는 지위를 부여한 대표작. 이 영화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초청됐고 한국영화진흥공사, 언론사 등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한국 영화에 늘 수위로 꼽혔다.

'오발탄'에 이어 '잉여인간'(1964), '카인의 후예'(1968),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 '장마'(1979) 등에서 유 감독은 이념 대립의 문제에 천착하며 피폐한 인물상을 묘사했다. '순교자'(1965), '사람의 아들'(1980) 등을 통해서는 실존적 인간의 내면을 묘사했다.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유 감독은 '아리랑'(1926)의 나운규. '임자없는 나룻배'(1932)의 이규환 감독의 뒤를 잇는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큰 봉우리였다"고 말했다.

64년부터 10년간 유 감독의 조감독을 맡았던 김호선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날부터 연출부 전체가 짐을 싸들고 합숙을 해야 했고 한 치의 실수만 있어도 촬영현장이 떠나가게 호통을 칠 정도로 영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정부는 고인이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 금관문화훈장은 문화예술인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훈장이다. 영화계는 고인의 장례를 예술원 회장인 영화감독 김수용씨를 장례위원장으로 한 대한민국영화인장으로 5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유족은 부인 박근자(서양화가)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발인 7월 2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02)2258-5940

■ '오발탄'은 어떤 영화?

영화 오발탄의 줄거리는 이범석의 원작소설과 비슷하다. 박봉에 시달리는 가난한 계리사 송철호는 치통을 앓고 있지만, 이 뽑을 돈조차 없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간다. 그에게는 늘 '가자~가자'라고 외쳐대는 정신이상의 노모와, 영양실조에 걸린 만삭의 아내, 그리고 사고만 치는 남동생 영호와 양공주로 전락한 여동생 명숙이 있다. 영호는 은행을 털다가 붙잡히고, 철호의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숨진다. 아내가 숨지던 날 철호는 아픈 이를 뽑고, 서울의 거리를 배회한다. 전후의 암울함을 그린 탓에 '오발탄'에는 유머 한 마디조차 나오지 않는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