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에 CMA(종합자산관리계좌)를 둘러싸고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자본시장법 시행에 따라 다음달 말부터 CMA를 통해 각종 공과금 등 소액결제가 가능해지고 계좌이체가 자유로워지면서 증권사와 은행들이 계좌 쟁탈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올 여름 펼쳐질 CMA 대전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다. CMA를 선점했던 증권사는 카드사와 손잡고 고금리에 카드서비스, 그리고 은행계좌와 동일한 기능을 갖춘 '슈퍼 CMA'를 무기로 총공세에 나섰다. 반면 지급 결제의 독점권을 빼앗긴 은행권은 CMA에 버금가는 고금리 예금상품을 선보이는 한편,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을 우군(友軍)으로 끌어들이며 강력한 방어막을 치고 있다.
증권사, '공격 앞으로'
증권사의 공세는 매섭다. 이달 초 카드사와 연합해 'CMA 카드'를 출시하는 등 CMA의 결제 기능이 본격화하는 7월 말을 겨냥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증권사의 주 타깃은 금융상품의 허브계좌로 불리는 월급 통장이다. CMA가 단순 고금리 투자상품에서 고금리 월급계좌로 변신하면서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슈퍼 CMA의 파괴력도 만만치 않다. 이미 CMA 잔액은 지난해 10월 이후 이달까지 7개월 만에 10조원 가까이 증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때문에 지급결제기능까지 더해지면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박은준 신영증권 연구원은 "대기업 그룹이 계열 증권사에 월급통장 거래를 시작하면 현재 38조원 수준인 CMA 잔액이 2013년에는 10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은행들, '철옹성 쌓아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은행들은 강력한 수성(守城) 전략을 펴고 있다.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최고 연 4%대의 고금리 수시입출금 통장을 내놓고 각종 부가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슈퍼 서비스'로 맞불을 놓고 있다. 증권사에 대한 압박도 불사하는 분위기다. 우리은행은 다음달부터 CMA 고객이 당행 자동화기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경우 건당 수수료를 최대 1,000원까지 내도록 했고, 다른 시중은행도 이 같은 '패널티'를 검토 중이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이른바 힘 있는 기관의 간접 지원사격도 받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9일 시중 은행장들과의 만남에서 "CMA가 금융시장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고, 금융감독원도 불공정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미스터리 쇼핑'(현장 암행감시)에 나서기로 하는 등 일단 은행권의 손을 들어 준 상태다.
잠재적 불안 요인 될 수도
금융당국은 시중자금이 급격히 CMA로 몰릴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CMA가 국공채 등 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투자 상품인 만큼 지나치게 커질 경우 금융시장 불안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IMF 때와 같은 금융사태가 벌어져 고객들이 CMA에서 돈을 일시에 인출하게 되면, 증권사는 돈을 먼저 내주고 채권을 한꺼번에 시장에 내놓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와 은행 간 고금리 경쟁도 불안하다. 조달 금리를 높여 결국은 대출이자 상승으로 이어져 서민경제에 큰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당 경쟁이 금리경쟁으로 번질 경우 부담은 결국 대출 고객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CMA에 지급결제 기능을 빼앗긴 은행들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CMA로 얼마간 자금이 이동하더라도 급격한 쏠림 현상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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