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가에 조용한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오랜 세월 미뢰를 자극했던 정제염을 밀어내고 천일염이 주방을 점령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광물에서 식품으로 전환된 이후, 천일염으로 소금을 바꾸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이른바 '소금혁명'이다.
■ 싸구려 광물에서 명품소금으로
웨스틴 조선 호텔은 22일부터 국내 호텔 최초로 객장 내 전 레스토랑에서 신안산 천일염만을 사용한다. 정제염과 호주산 레이크 크리스털 소금, 일본의 오키나와 소금 등을 병행해 사용해왔던 웨스틴 조선은 천일염을 실제 음식에 적용하는 한 달 간의 테스트를 거쳐 이번 주부터 천일염만을 사용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인터컨티넨털 호텔은 지난해 천일염이 식품으로 인정된 직후부터 발 빠르게 일부 메뉴를 제외한 대부분의 요리에 천일염을 도입했다. 롯데호텔과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도 광범위하게 천일염을 쓰고 있는 중.
호텔뿐 아니라 유명 식당들도 정제염 대신 천일염으로 맛을 내고 있다. 한식당 체인 용수산과 이태원의 프렌치 레스트랑 봉에보도 대표적인 천일염 식당들이다.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여 태양과 바람으로 건조시킨 천일염은 그동안 불순물이 많다는 이유로 식품 아닌 광물로 분류됐었다. 그 탓에 기계를 이용해 바닷물에서 염화나트륨만을 추출한 정제염이 65년간 식탁을 지배해왔다. 천일염은 아삭아삭한 김치 맛을 위해 배추를 절일 때나 음성적으로 사용됐던 게 고작.
하지만 나트륨 함량이 99%인 정제염이 고혈압 등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이 새롭게 부상 중이다. 특히 전남 신안으로 대표되는 국내산 천일염은 나트륨 함량이 82.85%로 낮을 뿐 아니라, 칼슘 1,429㎎/㎏, 칼륨 3,067㎎/㎏, 마그네슘 9,797㎎/㎏ 등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이는 '명품 소금'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
웨스틴 조선의 조리총괄 이 민 상무는 "천일염의 도입은 3년 전 화학조미료(MSG)를 추방한 데 이은 두 번째 주방의 혁명"이라며 "천일염이 브랜드 파워는 약하지만 맛과 영양 면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 천일염, 맛과 영양을 동시에
현대의학과 요리는 소금을 두고 종교와 과학처럼 반목했다. 소금은 음식 고유의 맛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지만, 건강식이 강조되면서 소금을 제 양대로 사용하는 게 죄악시된 것. '싱겁게, 더 싱겁게'가 모든 요리에 적용되는 황금명제가 됐다.
하지만 요리하는 사람들에게 '싱겁게'는 무거운 족쇄. 싱겁게 간을 하면 맛이 죽는 경우가 태반이라 싱거우면서 맛있는 요리란 실상 형용모순에 해당한다.
천일염은 이런 모순 상황에 놓인 요리사들에게 '복음'이다. 짠맛을 제대로 내면서도 풍부한 미네랄이 혈압을 낮춰주고 혈관을 정화하는 등의 효과를 내기 때문. 소화 촉진과 해독 살균 기능도 한다.
천일염이 각광받는 것은 비단 영양 때문만은 아니다. 맛에서도 단연 정제염을 앞선다. 봉에보의 이형준 셰프는 "천일염은 소금 특유의 쓴맛이 덜하고 단맛이 많이 난다"며 "특히 뒷맛이 깔끔한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용수산 청담점의 김재영 차장도 "천일염으로 음식을 하면 정제염과 달리 쓴맛이 안 나고 순수한 소금의 향취가 잘 살아난다"고 했다.
이 민 웨스틴 조선 상무는 "천일염에는 제5의 맛으로 불리는 '감칠맛'이 있다"며 "미네랄이 소위 풍미라고 일컫는, 음식 맛을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천일염 예찬론을 폈다.
■ 마지막에 톡톡 뿌려주면 풍미 더해
나트륨 함량이 낮은 천일염을 사용해서 요리를 할 땐 손대중으로 적당히 간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감각의 습득이 필요하다. 정제염과 사용량이 달라 넣어도 넣어도 간이 안 맞기 일쑤. 나물 같은 경우 넉넉하게 간을 해 '팍팍' 무쳐도 좋다.
천일염을 녹차와 함께 볶아 사용하면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는 데 효과적. 웨스틴 조선 일식당 스시조가 아나고 덴뿌라와 전복찜 소스로 이 '녹차 소금'을 사용하고 있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훈제소금을 쓰는 게 좋은데, 바비큐 그릴이 있으면 가정에서도 나무를 때서 나무 타는 향이 밴 훈제소금을 만들 수 있다.
천일염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간단한 팁 하나. 바다 내음 머금은 소금향이 풍기도록 요리를 내가기 직전 완성된 음식 위에 천일염 몇 알을 살짝 뿌리는 센스를 발휘해 보자. 재료 고유의 맛과 함께 풍미를 돋워준다.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같은 달착지근한 디저트에도 가볍게 터치해주면 좋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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