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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쉿, 들킬라" 조용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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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쉿, 들킬라" 조용한 맛

입력
2009.06.2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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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맹장 수술을 하셨다. 지난 주말부터 며칠간 엄마는 죽만 드셔야 했고, 죽을 드시기 전 이틀은 금식하셨다. 엄마 곁에 있는 나로서는 끼니를 '조용히'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물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식욕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간호를 맡은 내 체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해줄 음식이 뭐 있을까.

맨 처음 떠오른 메뉴는 식빵. 종류별로 다르지만 한 조각에 대략 150kcal 내외의 열량을 내는 식빵을 연달아 두 조각 우물거리며 먹었더니 공복이었을 때 보다는 힘이 났다. 식빵은 번잡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식재료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생각해 낸 것이 두부였다. 탄수화물이 대부분을 이루는 식빵에 비해 두부는 단백질 섭취가 가능했다. 데쳐 낸 두부에 간장, 샐러드 드레싱 등을 응용해 만든 소스로 매번 다른 맛을 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메뉴 중 압권은 떡볶이였다. 밍밍한 식빵, 담백한 두부 따위만 먹다가 매콤달콤 양념이 묻은 떡을 입에 넣는 순간, 너무 맛있어서 울 뻔했다. 수건이나 약, 신문을 나르는 간병 잔심부름 막간에 부엌 한 켠에 서서 몰래 씹어 넘기는 떡볶이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입안에서는 쫄깃, 하지만 그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 떡이 고마웠다.

음식의 맛이란 자고로 보는 맛(시각), 맡는 맛(후각), 먹는 맛(미각), 씹는 맛(촉각), 그리고 듣는 맛(청각)이 두루 갖춰질수록 완벽한 것이라 생각해 왔다. 보글보글 끓는 전골, 아삭 소리가 들리는 튀김, 팬에 얹자마자 '치익' 하며 익어가는 스테이크 등 소리를 동반하는 맛은 일단 그 소리를 듣고 나면 특히 거절하기 힘들지 않나.

하지만 '엄마의 금식'을 지내며 불 위에서 익는 동안에도, 입으로 먹는 동안에도 소리가 나지 않는 음식, 식빵이나 떡 아니면 두부나 죽 또는 수프의 '조용한 맛'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식욕을 당기는 소리가 나는 음식은 먹는 동안 기분을 상승시키고, 조용히 익혀서 입에 넣고 소리 없이 씹어 넘기는 음식은 먹는 동안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확률이 높은 것 같다.

후룩후룩 떠먹는 버섯전골에 김치를 우적 씹어 먹으면 흥이 나고 밥 먹는 속도가 붙는 반면, 가래떡을 조금씩 잘라 먹을 때에는 천천히 씹어 넘기게 된다. 그러니까 우울한 기분이 들면 보글거리고 지글거리는 소리가 요란한 음식을, 흥이 너무 올라 기운이 뻗치는 날에는 조용한 음식을 먹으며 나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겠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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