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존엄사' 시행 환자 김모(77ㆍ여)씨는 인공호흡기 제거 후 사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스스로 숨을 쉬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김씨는 25일 오전 8시15분쯤 갑자기 호흡 곤란을 보여 의료진과 가족들을 긴장시켰으나 30분 만에 안정을 되찾았다.
예상치 못한 김씨의 장시간 생존은 예측불허의 생명작용에 대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김씨에 대한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과 병원측의 과잉진료 여부가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본질을 벗어난 논란보다는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환경과 제도를 마련하는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사망임박 단계' 판단 논란
대법원은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한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 김씨를 둘러싼 법률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김씨의 상태를 '사망임박단계', 즉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상태'로 판단한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씨의 연명치료 중단을 곧 사망으로 인식했다. 김씨의 연명치료 중단에 반대해온 세브란스병원측마저 호흡기를 떼면 길어야 3시간 정도 생존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예상이 빗나가면서 일각에서 대법원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낸 안대희ㆍ양창수 대법관은 "의식회복 가능성이 5% 미만이라도 남아 있어, 의식회복 가능성이 없다거나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대의견을 낸 바 있어,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오해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의 본질은 '존엄사'가 아니라,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행복추구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 의학에서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해서 아무런 판단도 하지 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병원의 과잉진료 논란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김씨에게 병원이 과잉진료를 해온 것 아니냐는 주장은 가족측이 적극 제기하고 있다. 불필요한 과잉진료로 김씨의 치아가 부러지고 입술이 변형되는 등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가족측은 25일 이에 대한 위자료 4,000만원을 병원측에 추가로 청구했다.
그러나 김씨 주치의인 박무석 교수는 "지난해 2월 조직검사 중 과다출혈로 기도(氣道) 폐쇄가 일어나 호흡기를 달았고, 이후 2,3주에 한 번씩 기계 조작을 통해 인공호흡 빈도를 낮추며 자발호흡 능력을 시험했지만 그때마다 호흡 곤란이 왔었다"고 반박했다.
한 전문의도 "중환자는 숨쉬는 것 자체가 근육 피로로 이어져 호흡 곤란을 겪기 쉽고, 체내 가래 제거를 위해서도 호흡기 부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 가족의 대리인인 신현호 변호사는 "(병원측의 시험이) 환자의 호흡 능력을 알아보기엔 턱없이 미흡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도 "폐활량 조사, 호흡근육 점검 등 호흡기를 뗄 때의 국제적 표준 조치가 있는데, 호흡기 조작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사회적 합의, 제도 마련 계기로 삼아야
많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란들에 대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며, 이번 사안을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제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는 "환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줬던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환자가 가족들의 손길을 느끼면서 서서히 임종과정에 접어들 수 있게 된 것이 존엄사가 지향하는 진정한 의미"라고 말했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기획조정실장은 "대법원의 판단은 개별사건에 한정된 것으로 이를 둘러싼 논쟁은 소모적이다"면서 "의료계 전체가 모여 존엄사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각계 각층의 여론을 모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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