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월동 야구장 앞 작은 골목에는 동네에서 소문난 '딸 부잣집'이 있다. 고교 3학년부터 올해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까지 네 명의 딸들이 엄마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산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반지하 셋방이지만, 종일 지지배배 종다리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웃들은 엄마만 보면 격려 반, 부러움 반 덕담을 건넨다. "연주 엄마는 부러울 게 뭐가 있어, 세상에 최고 부자네." 물론 이 말 속에는 착하고 예쁜 가족이 아빠 없이 힘겨운 삶을 사는데 대한 안타까움도 묻어 있다.
엄마 한은숙(47)씨가 정말 남부러울 것 없던 시절도 있었다. 6년 전 농사를 짓던 무던한 남편이 가족의 울타리가 돼 주었을 때다. 비닐로 벽을 친 단칸 옥탑방에 살았지만, 올망졸망한 딸들과 남편이 함께 밥상에 앉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유난히 얼굴이 까맣던 남편이 농사 짓느라 햇볕에 그을려 그런가 싶었을 뿐, 간암으로 그렇게 빨리 가족의 곁을 떠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남편은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병원에서 간암말기 판정을 받고 꼭 보름 만에 손 써볼 새도 없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막내가 겨우 생후 16개월 됐을 때였다. 벽제에서 남편을 화장하고 돌아온 날, 눈물을 안주 삼아 쓰디쓴 소주 한 병을 마신 뒤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잠든 아이들의 얼굴이 엄마를 붙잡았다.
"애들이 고아원으로 보내지겠구나 생각하니 못하겠더군요. 사는 게 막막했지만 애들은 지켜야지 싶었어요. 결국 기 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보자 마음을 잡았죠."
천성이 밝고 긍정적이었지만 남편이 가고 첫 1년은 집에 가만 있지를 못했다. 초등학생 두 딸을 앞세우고 막내는 들쳐 업고 셋째는 손을 잡아 걸리면서 마트로, 한강변으로, 시장으로 정처 없이 떠돌았다.
넋을 놓고 다니는 엄마 심정을 알았는지 꼬맹이들은 마트에 가서도 값싼 막대사탕 하나 사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었다. 집에 있으면 남편 생각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원망, 애처로움, 그리움, 모든 감정이 하나로 섞여서 미친 바람처럼 머리 속을 웅얼거리며 돌아다니던 시기, 오직 아이들 만이 그가 기댈 수 있는 의지처였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생계가 막막했지만, 다행히 코흘리개 넷 딸린 사정을 봤는지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된 셈이었다. 문제는 아이들 교육이었다. 아빠 없이 크는 아이들이 제 몫을 할 수 있게 키우려면 제대로 가르쳐야 했다.
하지만 정부보조금으로는 다섯 식구 월세 내고 세끼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다. 아이 넷을 돌보면서 길거리 청소며 식당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학원은커녕 학습지 하나 시킬 형편이 못됐다. 그때 학습지 '빨간펜'으로 유명한 교원에서 기쁜 소식이 왔다.
"2005년 9월 무렵이에요. 교원에서 학습지 교사로 일하는 사촌언니가 우리 형편이 워낙 안 좋으니까 사회공헌 프로그램 수혜자로 추천을 했는데 바로 됐어요. 얼마나 고마운지, 당장 애들 학습지부터 시켰죠."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가난한 엄마는 네 딸 앞으로 학습지 하나씩 시켜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정말 어려울 때 손 내밀어주는 누군가 있다는 생각이 큰 힘이 됐다. 여름방학에는 1박 2일 캠프 초청장도 날라왔다. 처음에는 수줍어하던 아이들이 이제 해마다 여름방학의 가장 큰 행사로 캠프를 손꼽아 기다린다.
딸 넷은 엄마의 낙천적인 성격과 아빠의 선량한 마음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쌍둥이처럼 닮은 연년생 첫째와 둘째는 자기들 공부에도 바쁜 고3, 고2인데도, 인근 초등학교 화장실 청소를 다니는 엄마를 대신해 두 동생을 닦이고 먹이고 공부시키는 일까지 빈틈이 없다.
"언제 아빠가 그립냐"는 질문에 첫째 연주는 잠시 머뭇하더니 "엄마 생일 때면 아빠가 옆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고 한다. 딸은 자라면 엄마의 속 깊은 친구가 되는 법이다.
딸 부잣집은 밤이면 시끌벅적하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데 하물며 다섯이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모르지만 같이 있으면 웃음꽃이 질 새가 없다. 그러고 보면 액자 속의 아빠도 웃는 얼굴이다. 딸들과 함께 함박웃음을 짓던 한씨의 시선이 TV 앞에 가지런히 놓인 손바닥만한 장식용 전원주택 모형에 가 닿았다.
"여기 제 꿈이 담겨있어요. 언젠가는 공기 좋은 시골에 예쁜 집 짓고 딸들하고 사위들하고 같이 사는 거. 그 생각만 하면 행복해요. 1층은 누구를 줄까, 2층은 어떻게 꾸밀까…. 이 모형들을 보면서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지,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도 생각하고 살아야지' 늘 다짐합니다."
● 교원그룹의 '인연사랑 캠페인'
'빨간펜', '구몬학습' 등으로 유명한 교원그룹(회장 장평순)의 기업 슬로건은 '내일을 만드는 인연'이다.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데 사람 사이의 인연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믿음을 담았다. 사회공헌 활동 역시 사람이 근간이다. 2001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인연사랑 캠페인'이 그 것이다.
인연사랑 캠페인은 '인연을 맺어요 사랑을 나눠요'라는 교원그룹 사회공헌의 슬로건을 줄인 말로, 한번 인연을 맺은 후원 아동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임직원과 후원 아동이 인연을 맺어 한시적 지원이 아닌 꾸준히 관심을 이어갈 수 있도록 활동한다.
후원 아동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후원금을 1년간 지원 받으며, 이후에도 매년 열리는 인연사랑 캠프를 통해 아름다운 만남을 지속한다. 지금까지 모두 164명의 아동이 교원그룹과 인연을 맺고 3억원 이상의 경제적 후원을 받았다.
특히 올해로 8회째 열리는 인연사랑 캠프는 후원 아동과 지속적인 인연을 유지시켜주는 사랑 나눔의 장이다. 매년 여름방학에 교원그룹 연수휴양시설에서 열리는 캠프는 과학, 역사 등의 체험학습과 임직원 봉사자와 아동들의 친밀감을 높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지금까지 매회 100명 이상의 아동 및 직원이 참여했고, 올해부터는 공부방, 다문화가정 자녀 등으로 규모와 대상을 확대해 진행한다.
교원그룹은 올해부터 더욱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연사랑 캠페인은 해피 레인보우(Happy Rainbow), 해피 러닝(Happy Learning),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의 세 가지 사업군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해피 레인보우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 분야에서 아동의 숨은 적성을 발굴해 주는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8월에는 다문화가정 자녀들과 임직원, 대학생 봉사자가 함께 하는 경주역사 체험학습 캠프를 진행한다.
해피 러닝은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자는 취지로 진행되는 공부방 지원 사업이다. 올해는 경기 가평군과 손잡고 관내 11개 공부방에 환경개선, 도서 지원 및 학습 지도 등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해피 투게더는 재해 발생 때 인연사랑 봉사단을 상시 가동해 복구 활동에 즉각 참여하며, 교육봉사도 진행한다. 특히 2006년부터 유급봉사 휴가제도를 마련해 임직원들의 봉사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은 "교육사업을 통해 성장한 기업인 만큼, 이 땅의 아이들이 보다 큰 희망을 꿈 꿀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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