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연주 전 KBS 사장 퇴진과 MBC 'PD수첩' 파문으로 뜨거운 여름을 경험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올해도 안팎의 난제에 부딪쳤다. MBC는 PD수첩 수사 후폭풍으로 정치권으로부터 경영진 거취에 대한 압력을 받고 반발하고 있고, KBS는 비정규직 사원들에 대한 대규모 해고 방침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 8월에 대주주 이사진 교체 앞둔 MBC
MBC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한나라당 의원 40명이 PD수첩 수사와 관련해 "경영진 사퇴"를 종용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식 석상에서 입장 표명을 하는 경우가 드문 엄기영 사장도 22일 경영진 회의에서 "진퇴 여부는 내가 결정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MBC는 23일에도 경영진 회의를 열어 정치권의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했다.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는 않았지만 노조나 야당의 대응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부와 여당에 불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색이다.
회의 이후 MBC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MBC가 PD수첩 보도와 관련해 시청자 사과를 했는데 검찰이 제작진을 기소하는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말로 분위기를 전했다.
MBC 노조는 24일 오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MBC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조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청와대의 홍위병을 자처하며 MBC 장악 음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사실상 엄기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MBC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8월 중 MBC의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 교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9명의 신임 이사진이 친여 인사들로 채워질 경우 PD수첩으로 흠집이 난 현 경영진은 당장 물러나는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
정치권의 압박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류성우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은 "방문진 이사들이 친정부 성향 인사로 채워지는 상황이 오면 아마도 MBC 조직원들의 강한 내부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KBS는 비정규직 420명 문제로 내홍
KBS는 조직 내부 인사 문제로 폭풍에 휩싸이고 있다.
420명의 비정규직 직원을 둔 KBS는 7월 1일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이들 중 39명만 고용이 보장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후 나머지는 계열사 정규직으로 이관(292명)하거나 계약을 해지(89명)할 방침을 굳히고 있다. KBS는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는 것으로 새로운 자회사를 만들어 인력을 이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비정규직 사원들의 모임인 KBS기간제사원협회는 22일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영방송인 한국방송이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려고 대량 해고를 추진한다"며 "방침을 철회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고 반발했다.
기간제사원협회는 사측의 계약 해지에 대응할 법적 대책 마련과 함께 노조와의 연대도 준비 중이다. 협회 관계자는 "일반직 사원들도 해고를 막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회사의 최종적인 입장이 나오면 투쟁 강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오후에는 KBS 경영진의 비정규직 구조조정안을 논의한 이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몇몇 이사들은 계약 해지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사측의 입장에 동의하는 목소리도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KBS는 이사회의 의견을 참고해 6월 말까지 최종적으로 비정규직 구조조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양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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