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주요 국가의 집권 정당은 대개 중도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물론 선거에서 좌우가 아닌 중간지대의 부동층 유권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전략적으로 중도를 내세운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집권 후에도 반대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정책에 반영하다는 점에서 여야가 양 극단으로 치우쳐 대결하는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92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 예비선거에서 중도와 일부 온건보수 노선을 수용한 '신 민주당론'을 내세워 승리한 뒤 8년간 집권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97년 기존 노동당의 좌파적 색깔과 공약을 버리고 중산층과 우파의 가치관을 포용하는 '제3의 길'을 채택, 3차례 총선에서 연속 승리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98년 제3의 길인 '신 중도(neue Mitte)'를 제창, 만년 2등에 그쳤던 사민당에 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들의 중도노선은 집권 후에 더 빛났다. 입으로만 중도를 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8년 내내 거대야당인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쳤지만 의원들에게 일일이 정부정책을 설명하는 유연성을 발휘, 의회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이는 90년대 미국 경제의 호황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블레어 총리도 매주 야당 지도부와 만나 현안을 논의, 주요 정책에 야당의 요구를 반영했고 슈뢰더 총리도 야당과의 교감을 통해 시급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중도가 이념의 차원을 넘어 여야간 대화를 전제로 구체적 정책과 경제성과로 나타나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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