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니고 투쟁 상대다."
한나라당이 22일 6월 국회 단독개회를 결정한 직후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던진 이 말은 대결로 치닫는 우리 국회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18대 국회 들어 지난해 촛불 정국과 원구성 협상으로 인한 국회 파행, 연말연시 물리적 충돌 등 여야 간 대결정치가 반복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이른바 합리적 온건파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에는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과 소장파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이 정부 여당에 쓴소리를 자주 한다. 민본21은 최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말이 있길 기대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고 비판했다. 원 의원도 당내 쇄신특위 위원장으로서 당ㆍ정ㆍ청 쇄신을 요구했다. 또 민본21은 지난해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을 9억원으로 상향조정하는 개편안을 내놓자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수용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민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 조문정국 이후 당 정체성을 좌클릭하려는 지도부를 향해 "중도 성향의 국민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조언한 박상천 김성순 의원과 6ㆍ10범국민대회 당시 "거리에 나가기보다 국회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강봉균 박지원 의원은 소수파로 묻히곤 한다.
이런 현상은 여야 대치 국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6월 국회 단독개회를 의원 만장일치로 결정한 한나라당 의총과 이에 대한 대책 논의 과정에서 강경파의 주장이 주를 이룬 민주당 의총은 대표적 사례다.
합리적 온건파의 목소리가 작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의 경우엔 종속된 당청 관계를 꼽는 이들이 많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6월 국회 개회 협상에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청와대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지 못해 야당에 제시할 카드가 없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조문 정국 이후 전통 지지층이 복원되고 있는 관계로 지지층 결집을 고려한 강경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국에서는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금과옥조로 받드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 여당이 다수 의견뿐 아니라 소수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치에 담아낼 것인지도 간과해선 안될 덕목이라는 얘기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정당 지지율이 60%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어느 정당이 40%에 이르는 부동층의 민심을 먼저 포착, 반영하느냐가 정국 주도권 경쟁에서 승리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경헌 대표는 "여야 모두 대결 구도가 단기적 승부수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당내 소수파에 귀를 기울여 부동층의 민심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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