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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영진위가 사는 길

입력
2009.06.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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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역할과 특성이 다른 곳에 일률적 기준을 적용한 평가가 '다소' 불합리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다소'가 최상을 최하로까지 둔갑시키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기획재정부의 '2008년도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꼴찌 점수를 받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난 1년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유있는 공공기관 평가 꼴찌

평가단은 꼴찌의 이유로 정원감축 미완료, 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의 실패를 꼽았다. 과다한 노조 전임자수를 그대로 둔 것도 문제를 삼았다. 이를 두고 'MB 정부식 개혁' 잣대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영진위를 들여다보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민간 행정기구로 출범한 영진위는 정권의 배려와 한국영화의 호황, 많게는 1년에 1,000억원이 넘는 예산(영화진흥금고) 집행자로 호사를 누려왔다. 여기에는 코드인사로 채워진 위원장과 위원들의 직무 유기도 한 몫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아니면 자기 식구 봐주기를 위해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야합했다.

그 결과 노조를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만들어 주었다. 조합원이 외부 단체에서 활동해도 전임으로 간주해 월급을 준다. 상급 단체에 대한 전임 여부도 노조가 마음대로 결정한다. 노조 동의 없이는 인사도, 직무와 관련한 징계도 할 수 없다. 지난 3월에는 계약이 만료되는 계약직 직원 5명을 내보내려 하자 노조가 단체협약을 들어 반발하면서 위원장 사퇴까지 요구했다. 2005년 도입한 '팀장 내부공모제'는 평가위원 7명중 5명을 노조간부가 차지해 팀장 인사까지 노조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영진위가 추진해온 정책들 역시 한국 영화시장의 상승세에 가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허점 투성이었다. 시장 환경의 변화에도 둔감했다. 판권담보 융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독립영화 지원금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었다. 작품에 직접 지원도 모자라 펀드까지 만들어 도와주는 '사업'까지 마구 벌였다. 자의성과 모호성, 형평성 상실로 선정과정에서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5월에 출범한 제4기 위원회에게는 이를 바로잡고, 위기의 한국영화를 부활시킬 정책을 제시할 임무가 주어졌다.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더욱 위원장의 리더십과 새로운 전략, 조직의 자기혁신이 요구되었다. 노조도 처음에는 양보와 희생을 각오하는 듯했다. 그러나 독단과 적대감만을 앞세운 강한섭 위원장으로 인해 개혁은 불신을 받았고, 갈등만 커졌다.

위원장은 약점을 보완해줄 행정가 출신을 거부하고 사무국장에 '자기 사람' 쓰기를 고집했다. 영화인들과의 대화와 타협은 고사하고 위원들과의 소통도 게을리했다. 영화인들의 불신이 커진 것도, 노조가 이기주의로 돌아선 것도 이런 위원장에게서 개혁 의지와 능력, 공정성과 객관성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정책도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위원장은 이를 두고 영화계에 만연한 이념대립, 신구세대 갈등으로 몰아가는 어리석음까지 범했다.

위원장 잘못만은 아니다. 영진위가 의결기구인 만큼 이유야 어디에 있건, 끝까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위원들의 책임도 있다. 이번 평가 결과와 위원장 해임 건의를 놓고 이렇게 생각하는 노조원이 있을지 모른다. "봐라. 우리에게 잘못 보이면 결국 위원장만 당한다"고. 노조의 조직 흔들기, 위원장 희생양 삼기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평가에 따른 불이익이 단순한 성과급 차등지급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기 혁신의 정책기구 돼야

영진위가 살아남을 길은 하나 뿐이다. 모든 구성원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과거의 이념 편향성, 무사안일, 집단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 비효율적인 퍼주기와 방만하고 낭비적인 사업으로 기금을 낭비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자율과 책임을 가진 영화 정책기구로서 위상과 조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인사부터 달라야 한다. 현실감각이 없는 교수, 정실과 이념에 얽매이는 영화인, 낙하산 정치인 출신 위원장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함은 지난 11년의 영진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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