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 선거결과 이후 표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20일 참가자 10여명이 사망한 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정치적 갈등과 지도층 내 균열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겉으론 대선후보였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과 미르 호세인 무사비 후보간 대립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전직 대통령과 종교 실세들이 보수와 개혁세력으로 양분돼 한치의 양보 없는 이전투구 형태를 보이고 있다.
양측 갈등은 경찰이 전직 대통령인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의 딸을 체포하면서 표출됐다. BBC방송은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딸 파에제가 군중 선동 혐의로 친척 4명과 20일 체포됐다 풀려났다고 전했다. 라프산자니와 파에제는 지난 12일 대선에서 무사비 후보를 지지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대선 전 라프산자니의 부패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라프산자니가 보수파인 최고 지도자를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이슬람 최고성직자회의 의장 역할을 맡고 있어 보수세력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 하메네이의 권위는 계속되는 시위로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아누시 에테샤미 영국 더햄대 교수는 "라프산자니 가족 체포는 보수파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며 "라프산자니가 하메네이 축출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범 아랍권 신문인 알-아샤라크 알-아루사트는 "라프산자니가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아야톨라)들로 구성된 새 종교위원회를 수립해 하메네이에 대항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고 성직자회의는 최고 지도자의 임무수행을 감시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며 "만약 최고 지도자가 이슬람의 갈등을 증대시킨다면 성직자회의는 체제를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무사비 후보를 지지한 또 한명의 정치 거물인 모하메드 하타미 전 대통령까지 정부를 비난하고 나서 이란 지도층의 균열은 가속화하고 있다. 하타미 전 대통령은 21일 "정부가 군사통치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카네기 재단의 이란 전문가 카림 사자드푸르는 "이란 혁명 이후 엘리트 사이의 분열이 지금처럼 심각한 적은 없었다"며 "양측이 극도로 위험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부분 재검표 결과 대선 결과를 번복할만한 부정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압사바살리 카드코다이 대변인은 "50개 지역에서 유효 투표수가 전체 유권자 수보다 많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는 이란에서는 유권자가 선거구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란 혁명 수비대는 22일 "대선 결과에 항거하는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나설 경우 이를 분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사비 지지자들이 이날 밤 촛불을 밝히며 비폭력 시위를 벌일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해 공개 경고한 것이다.
전날 이란에서는 시위가 이어졌지만 전날처럼 격렬하지는 않았다. 테헤란 시내에서 헬리콥터가 순찰비행중인 가운데 무사비 지지층이 결집한 지역에서는 종종 총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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