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새 코너 '오빠 밴드'에 출연한 탁재훈이 한탄한다. 그가 출연했던 일밤의 코너 '대망'과 '퀴즈 프린스'는 모두 조기 종영했고, 일밤의 시청률은 계속 한 자리니 속이 탈 법도 하다. 21일에도 일밤은 1부 3.6%, 2부 3.5%의 시청률(TNS미디어코리아 자료)에 그쳤다.
그러나 탁재훈과 일밤은 좀 더 느긋해져도 좋다.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대세가 된 상황에서, 요즘 일밤은 과거를 재탕하고 있다. '퀴즈 프린스'는 과거 토크쇼와 퀴즈쇼의 단순 결합일 뿐이었고, '소녀시대의 공포영화 제작소'는 서세원의 전성기 시절 납량특집으로 종종 나온 포맷이었다.
'메인 MC 되기'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PD도, 출연자들도 맥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던 '대망'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 적응하지 못한 일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반면 '오빠 밴드'는 혁신적이지는 않아도 리얼 버라이티 쇼의 뼈대를 제법 잘 잡아냈다. 아직 미숙한 밴드의 공연이라는 기획 의도는 자연스러운 드라마를 만들며, 그들이 실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실력을 평가받는 과정은 정말 '리얼'이다.
'대망'에서는 역할 분담이 안 돼 우왕좌왕하던 출연자들도 '오빠 밴드'에서는 각자의 파트를 통해 역할이 만들어진다. 아이돌 출신의 어린 멤버가 실력있는 막내가 되고, 연주력이 부족한 탁재훈은 밴드의 위험요소가 된다. '오빠 밴드'는 캐릭터, 드라마, 리얼리티라는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요소들을 잘 구축했다.
물론 '오빠 밴드'가 경쟁 프로그램인 KBS2TV '해피 선데이'의 '1박 2일'을 당장 제칠 수는 없다. '무한도전'과 '1박 2일'이 그랬듯,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정을 바탕으로 드라마적인 재미를 주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밤의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커플인 황정음과 김용준이 출연 중인 이 코너는 과거 같은 인위적인 드라마는 없지만, 결혼 결정부터 상견례에 이르는 커플들의 연애사를 차분하게 그리며 소소한 재미를 준다.
과거의 '우리 결혼했어요'에 비해서는 무미건조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몰입의 힘은 커질 것이다. 보다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은 '오빠 밴드'가 자리를 잡으면,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일밤이 방향부터 틀렸다면, 지금의 일밤은 속도가 느릴 뿐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MBC가 이 신생 밴드와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을 차분히 지켜볼 인내심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그 점이 일밤 성패의 갈림길일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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