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어쿠스틱' 기타라고 불러야 옳다. 하지만 우리는 쉽고 편하게 통기타라고 불러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렇게 부르는 것에 사실 무리도 없다. 일본에서는 나마(生)기타라고 한다. 전기코드를 연결하지 않고 생으로 연주한다는 의미일 텐데 어쩐지 '통'이 더 친근한 듯하다.
그 통기타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는 오래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산 악기가 생산된 것은 1960년대 초반부터가 아닌가 한다. 그 전에는 일본이나 스페인 또는 미국산을 사서 사용해야 하는 바람에 값이 아주 비쌌다.
국산 통기타가 생산되자 싼 값에 엄청나게 보급이 된다. 그리고 통기타를 들고 노래 부르는 가수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자고 나면 한 사람 더 데뷔를 하는 식이었다. 정작 가수로 데뷔를 하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신문사나 방송국에 찾아오는 지망생이 한 달에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였으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수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도 기타를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곳곳에 기타학원이 생겼다. 요즘 흔한 커피숍만큼 있었다고 하면 약간 과장일까? 서울에서는 종로통과 을지로나 명동 등지에 학원이 즐비했다. 통기타 배우기 열풍은 그 후 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통기타 가수를 그 당시에는 '포크 싱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표현이다. 민요가수와 혼동 된다고 해서 당시 연예 기자들이 '통기타 가수'로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포크 싱어'라고 부르지 않는다. 60년대 중 후반에 데뷔하고 7,8년 이상 가수활동을 한 통기타 가수는 어림잡아 100명 가까이 될 것이다. 그들 중에 반 이상은 지금도 활동 중이다.
트윈폴리오는 송창식, 윤형주가 함께 만들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각각 따로 움직였다. 뒤이어서 출발한 뚜와 에 무와는 이필원과 박인희가 함께 했고, 라나 에 로스포는 한민과 은희가 만들어서 '사랑해'를 비롯한 많은 노래를 발표했는데 한민은 타계했고 은희는 감잎 천연 염색으로 만드는 옷감을 개발, 생산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임창재와 이수영으로 구성 된 어니언스는 '편지'를 비롯한 많은 히트곡을 쏟아냈지만 현재는 각각 따로 활동 하고 있다. 이수영은 서울 사당동에 대규모 음악 살롱을 운영 중이다. 통기타 그룹으로는 이외에도 4월과 5월이 있었는데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해서 HOT, 보아, 소녀시대 등의 스타들을 키우고 있고, 백순진은 통기타 가수들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서수남과 하청일도 따로 활동을 하는데 서수남은 국내에 있고 하청일은 해외에 살고 있다고 한다. 투코리안스 역시 김도향은 가수활동과 명상음악 개발을 하는데 손창철은 해외에 거류 중이다.
그룹이 아니고 솔로로 데뷔한 통기타 가수가 더 많다. 조영남은 최근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이장희는 미국에 있으며, 서유석, 최현, 이용 등도 현역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한 김세환, 이연실, 김민기, 양희은, 심수봉, 신형원 등등이 이른바 '7080 문화'의 주역들이다.
그룹사운드도 6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비틀스'가 세계를 흔들어 놓은 후부터 많은 나라에서 비틀스 사운드의 멤버와 같거나 약간 변형된 그룹들이 등장 했는데,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60~70년대 중반에 50여개의 그룹이 생겼다.
그런데 비틀스 멤버들이 긴 머리를 하고 있는 바람에 따라 하느라고 그랬는지, 장발 단속에 걸리는 해프닝이 자주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71년에 '그룹사운드회'를 창설해서 회장(김대환), 부회장(김홍탁, 장웅범, 조영조)이 한국일보로 나를 찾아와 "그룹사운드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좋게 하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내용의 단독 인터뷰를 했다.
나는 그들의 회원 수가 많으니 '그룹사운드 경연대회'를 개최해서 모임을 활성화 하는 것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주었고 71년 3월에 서울 시민회관에서 매우 성대하게 시행했다. 이 경연대회는 그 후로도 5년 동안 지속되었다. 단체상과 개인상 등 푸짐한 시상을 했는데 어찌나 열심히 노력을 하는지 매년 연주 실력이 느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당시 인기 있던 그룹사운드는, 키보이스, 히식스, 트리퍼스, 애드포, 데블스, 영사운드, 블랙 앤 화이트, 비 화이브, 비즈, 체인갱스, 드래곤스, 굿타임스, 라스트찬스, 아이들, 팝콘스, 히트걸스, 조커스, 미도파스, 제로스, 사베지, 영파워, 마인아이스 등등이다. 경연대회에 참가한 연주자 인원이 200명이 넘었으니 아주 큰 행사였다.
위에 소개한 그룹 속에는 신중현, 김홍탁, 윤항기, 차중락, 차도균, 조영조, 안치행, 이태원 등이 있다. 신중현은 작곡가로 변신하여 커피한? 미인, 님은 먼 곳에 등 주옥 같은 노래를 많이 만들었고, 아들들과 함께 음악 가족으로 유명해졌다. 김홍탁은 한때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다가 다시 귀국해서 현재 재즈아카데미의 대표로 있다.
윤항기는 목사가 되어 목회 일을 열심히 하면서 무대에 서고 있다. 차중락은 젊은 나이로 오래 전에 타계해서 안타깝다. 차도균은 장우, 박상규, 김준 등과 함께 간혹 '다이나믹스'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한다. 조영조는 미국에서 살고, 안치행은 작곡을 하면서 음원제작을 하고 있고, 이태원도 기획과 제작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솔직하게 밝혀 둘 일이 하나 있다. '그룹사운드'라는 용어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이런 용어는 없었다. 록 그룹, 뮤직 그룹, 팝 그룹, 보컬 그룹 등이 있다.
그러나 악기 연주를 하지 않고 노래하는 불루벨스, 자니브러더스, 봉봉4중주단, 이시스터스, 은방울자매 등과 구별을 하고자 내가 '그룹사운드(Group Sound)라는 용어를 만들고 신문과 방송에서 썼다. 물론 사전에 없는 말이다. 그러나 워낙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으니 이제는 정착이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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