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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세 번째 소설집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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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세 번째 소설집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입력
2009.06.2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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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43)씨의 세번째 소설집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문학동네 발행)는 소설로 지은 허무의 영토다. 수록작 9편의 인물들은 도시에서의 권태로운 일상을 하루하루 견뎌가는 이들이다.

실연은 이런 인물들이 풍기는 허무와 외로움의 알리바이다. 5년 동안 사귀어온 애인과 헤어진 여성('갈색 눈물방울'), 유부남 직장상사와 클럽에서 만난 외국 남성 등 이 남자 저 남자를 사귀지만 누구에게서도 정착감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안토니오 신부님'), 어려서부터 사귀어왔던 남자와 교제에 실패한 여성('스쿠터 활용법') 같은 이들이다.

실연을 경험한 인물들이 스스로를 위무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고도 슬프다. '애들아, 나 지금 골로간다'며 친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죽은 엄마의 두꺼운 스웨터를 몸에 걸치고 집 앞마당에서 하늘을 멀뚱히 바라보거나, 전신 수영복을 입은 채 대학운동장에서 조깅을 하는 식이다.

"나는 연애소설을 쓰는 일이 낯설다. 깨진 인간관계를 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소설 속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행태는 관계맺기에 실패하고 깊은 허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도시인의 전형이다.

비록 실연의 아픔을 겪지 않았지만 아침마다 "도대체 이 도시에 테러는 왜 안 일어나는거야"라고 중얼거리거나 벗은 채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여자('령'), 하루 한 끼는 함께 먹자는 엄마의 제안에 머리를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 "꼭 같이 먹어야 합니까?"라고 반문하는 아들('천변에 눕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허무에 사로잡혀 미쳐버릴 것 같은 도시인의 심리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수록작 9편 가운데 5편은 강씨의 2006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리나> 이후 발표한 작품들. 지독하게 차갑고 냉소적인 인물을 창조해 문단의 화제가 됐던 <리나> 에 에너지를 다 쏟았다는 작가는 " <리나> 이전의 소설을 읽었던 독자들에게는 이번 작품들이 좀 심심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설집 전체적으로 큰 사건들은 사라지고 일상의 무의미함을 돌파하려는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6개월 간 일본 도쿄에 체류했던 작가는 "일본 작가들에 비해 우리 작가들은 큰 이야기에 강하지만, 소박하고 사소한 일상을 그려내는 데 약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복잡한 한국사회의 현실은 하나의 컬러로만 따라가기 힘들다. 이번 소설집 역시 출구를 찾으려는 내 나름의 몸짓"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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