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화력(畵歷)으로 치면 40년인데… 만화가는 언제나 혼자야. 그 고독의 힘으로 만화를 그려요."(이희재) "내 시선이 표피에서 한 층 더 들어갔구나, 하고 생각될 때 쾌감과 고마움을 느껴요. 하지만 만화가 삶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윤태호)
올해는 한국 만화 100주년이 되는 해. 숱한 편견과 냉대를 딛고 한국 만화가 100년의 어엿한 역사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를 기념해 '한국만화 100년, 만화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포럼이 KT&G상상마당 주최로 20일 열렸다.
시사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980년대 사회상을 만화로 재구성해온 이희재씨, 현대 한국의 부조리한 단면을 파헤치는 만화를 그려온 윤태호씨, 새로운 감성의 웹툰을 온라인에 연재하고 있는 토마 등이 패널로 참여해 한국 만화의 내일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씨는 "영화와 같은 자본집약적 매체에 비해 만화는 상대적으로 게릴라적인 매체"라고 말했다. 그는 "만화가들은 각자 작은 수류탄 한두 개를 들고 특정 지점에 그걸 던져 일정한 성과를 내는 '에너지 폭탄'"이라며 리얼리즘, 현실참여의 도구로서 만화의 미래를 밝게 내다봤다.
그는 "우리가 배운 것은 대부분 서양의 것이었다. 그것을 털어내고 나를 돌아보니 '현실'이 보였다"며 "만화는 삶과 어우러지는 매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태호씨와 토마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주목했다. 윤씨는 "만화를 반드시 책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며 "중요한 것은 콘텐츠, 만화 자체이므로 웹툰, 모바일 환경에 맞는 연출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마는 타인의 삶을 엿보고 스스로를 거리낌없이 표현하는 인터넷 세대에 대해 "나르시시즘과 박탈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다"며 "균형감각을 지니고 이들에게 긍정적 힘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새로운 만화의 역할을 말했다.
박재동씨는 "그리스에 출장간 적이 있는데 거기엔 미국 만화뿐, 자국 만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며 "그리스는 아직도 과거의 문명을 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곳에서의 한국 온라인게임 리니지 열풍을 곁들이며 "만화는 새로운 문명이며, 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는 게 한국"이라고 진단했다. 박씨는 "만화가 일상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취미로라도 만화를 그리는 창작자가 돼, 독자들도 그 즐거움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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