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잠실 두산-KIA전. KIA가 0-1로 뒤진 7회초 선두 8번 김종국이 볼넷을 고르자 다음타자 김선빈은 초구에 번트를 댄다. 번트에 실패한 김선빈은 팽팽한 신경전 끝에 볼카운트를 2-3까지 끌고 간다.
그러자 3루 덕아웃의 조범현 KIA 감독이 오른손으로 팔뚝→가슴→턱→가슴을 터치한 뒤 왼손으로 모자→팔뚝→가슴→팔뚝→가슴→귀→모자→귀→모자를 만진다. 조 감독은 양 주먹을 상하로 부딪친 뒤 두 손으로 귀를 만진다.
이어 최태원 작전코치는 오른손으로 모자→턱→귀→벨트→손등을 만진 뒤 손을 바꿔 손등→팔뚝→턱→귀를 터치한다. 최 코치는 다시 오른손으로 왼 어깨→손등을 만진 뒤 두 주먹을 상하로 부딪친다. KIA의 런 앤드 히트 사인은 이렇게 해서 이뤄진다.
메이저리그 전문가 폴 딕슨은 자신의 저서 <야구의 감춰진 언어(the hidden language of baseball)> 에서 한 경기에서 양팀이 주고받는 사인이 무려 1,0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야구가 '사인의 스포츠'라는 말은 괜한 것이 아니다. 야구의>
■ 작전코치는 그라운드의 감독
작전코치는 감독의 사인을 선수들에게 전달한다. 여러 코치들 중 작전코치가 가장 순간 판단력과 눈썰미가 뛰어나야 하는 이유다. 작전코치는 경기 전 선수들과의 미팅을 통해 키(Key)를 정한다. 가령 모자를 키로 하고 왼손으로 세 번째 터치하는 부분이 '진짜 사인'이라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손등=번트, 팔뚝=치고 달리기, 어깨=도루다. 즉, 작전코치가 왼손으로 모자를 만진 뒤 어깨, 손등, 팔뚝을 터치했다면 '치고 달리기 사인'이다. 하지만 사인을 내는 과정에서 왼손이 다시 키로 가면 이전 사인은 모두 취소된다. '키=취소'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행위가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이뤄졌다면 '위장 사인'이다.
■ 사인에도 습관은 있다
습관(習貫)을 일본어로 쿠세(癖ㆍくせ)라고 한다. 쿠세는 투수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A구단 마무리투수의 경우 세트 포지션에서 글러브 위치가 벨트라인 아래로 처지면 슬라이더, 벨트라인과 일치하면 직구다.
그렇다고 쿠세가 투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B구단 작전코치는 '진짜 사인'을 낼 때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왼쪽으로 약간 틀어진다. C구단 전력분석 관계자는 "들키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의 심리이다 보니 진짜 사인을 낼 때 동작에 미세한 변화가 있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 사인은 투수도 낸다
투수는 주자가 등 뒤에 있을 때 포수에게 사인을 낸다. 포수가 먼저 사인을 내면 2루 주자가 사인을 훔쳐서 타자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인을 보더라도 동료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만 더러 비신사적 행위가 발생한다.
오른손 투수가 허리를 구부린 채 검지와 중지를 왼 어깨에 갖다 댄다. '포수가 내는 사인 중에 두 번째 공을 던지겠다'는 의미다. 그러면 포수는 가랑이 사이로 손가락 두 개, 네 개, 세 개를 차례로 펼친다. 대체로 두 개는 커브, 세 개는 슬라이더, 네 개는 체인지업이다. 투수는 약속대로 체인지업을 던진다.
■ 널 속이려다 내가 속네
작전사인은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자주 바꾸다 보면 혼선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인이 간파됐다고 생각하면 경기 중에도 키 등 사인의 핵심요소는 바꾸기도 한다. D구단 코치는 "우리 팀 선수가 사인 미스를 하는 것과 상대가 우리 사인을 간파하는 것을 비율로 따지만 8대2가량 된다.
상대가 사인을 간파하는 것은 상황에 따른 '예측'이지 사인동작을 캐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야구를 20년 이상 하고도 타석에서 사인을 잘 보지 못하는 선수들도 꽤 있다. 때문에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동작으로 사인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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