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궈원 지음ㆍ김세영 옮김/에버리치홀딩스 발행ㆍ712쪽ㆍ2만5,000원
고래로 중국의 지식인들은 '사농공상'의 맨 앞자리에 그 이름이 놓였다. 때로 사당에 위패로 모셔져 사람들의 절을 받을 수도 있었다. 잘하면 문선왕(文宣王)이라는 시호를 받은 공자처럼 명예로나마 왕 대접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병에 걸린 문인은 약도 없다'는 말이 있다던가. 지식인들은 명예라는 상징권력에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호시탐탐 정치권력을 탐했다. 지식인들에게 정치권력이란, 먹고 싶지만 입천장이 델까 두렵고, 안 먹자니 좀이 쑤셔 못견디게 만드는 달콤한 독약이었던 셈.
중국의 원로작가 리궈원(79)은 이 달콤한 독약을 마실까 말까 고민하며 속세와 탈속의 중간지대에서 끊임없이 방황했던 지식인들의 행태를 주목한다. 그 회색지대에서 최고권력자로부터 혹은 동료 문인들로부터 목이 베이고, 팔 다리가 잘리고, 허리가 끊기고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지식인들의 비참한 말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지은이는 한 무제의 심기를 건드려 궁형을 당한 사마천, 당 현종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르다 말년에는 줄을 잘못 서 감옥에 갇히고 결국 투신으로 생을 마감한 이백, 갑골문을 정리한 위업에도 불구하고 동료 문인과의 갈등으로 호수에 몸을 던진 청 말의 고증학자 왕궈웨이까지, 중국 지식인 36명의 죽음을 재조명한다.
문인들의 비극적 말로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최고 권력자들에 의한 보복이다. 지은이는 중국사에 300명이 넘는 황제가 군림했지만 그 중에 지식인을 높이 평가하고 진정으로 대접한 현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한다.
비교적 교양있는 축은 지식인들을 질투했고, 교양이 없는 자들은 지식인을 증오했으며, 반편이 같은 이들은 지식인들을 괴롭혔다는 것. 조조가 금주령을 발표하자 "요 임금은 술을 즐겼기 때문에 성현의 반열에 올랐다"며 공공연히 조조를 비꼬다 사형당한 공융, '명사(明史)'를 편찬해 이민족 정권의 약점을 건드린 죄목으로 청의 강희제에게 처형당한 장정롱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동료들의 질투로 목숨을 잃은 문인도 부지기수다. 사부(詞賦)에 능한 문장가이자 뛰어난 역사학자, 서예가, 작곡가로 동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꼽히는 후한의 채옹이 그런 인물이다. 그의 죽음이 중국인들의 '참치통조림 법칙'과 연결돼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흥미롭다. 오랫동안 자급자족의 농경사회에 살아 경쟁에 대한 관념이 결여돼있는 중국인들은 "네가 나보다 나으면 얼마나 나으며, 내가 너보다 못하면 얼마나 못하겠냐"는 생각에 사로잡혀 평균적인 것을 생산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 채옹은 너무나 특출했기 때문에 죽음을 당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지식인들에 정치보복을 일삼은 황제들이나 그들의 재주를 질투한 동료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지식인들의 죽음은 권력에 대한 그들의 이율배반적 태도에 기인했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문장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벼슬을 탐하다가 교수형을 당한 서진시대 육기의 죽음에 대해 그는 "글쓰기가 자신의 최대의 무기라면, 관직이 바로 자기자신에게는 최대의 약점"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지식인들에게 "어떤 종류의 유혹이든, 그것이 금빛이든, 은빛이든, 핑크빛이든, 심지어는 오색찬란하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가능한 한 그것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작가협회 명예위원인 리궈원은 1957년 공산당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을 내놓았다가 우파 작가로 낙인찍혀 문화혁명기에 철도 건설현장에 하방돼 20여년간 붓을 꺾어야 했던 인물. 그같은 경험이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에 대한 그의 성찰에 무게를 더해준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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