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가수 폴 포츠(Paul Potts)가 서울광장 야외무대에 섰다. 2007년 영국 I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우승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병마와 교통사고를 겪고 휴대폰 외판원으로 생활에 쪼들리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가 빛을 본 것이다.
세계적인 테너 가수가 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어릴 때 재능이 발굴되어 비싼 과외선생과 유명 음악학교의 고명한 선생에게 배워도 될까 말까 하다. 폴 포츠 같은 사람은 재능이 있어도 빛을 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국경을 초월하여 전 세계가 그에게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인간승리와 출발의 불평등
엄격한 음악성을 잣대로 보면 독학의 실력이 체계적으로 훈련한 정통 가수보다는 허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왜 폴 포츠인가. 불리한 여건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이기 때문이다. 세계 도처에는 여건과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세계적으로 날릴 재능을 가진 숨은 예술가, 스포츠맨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능력과 무관하게 출발부터 동등한 선상에 서지 못했다. 부자집 아이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있고 자신은 휠씬 뒤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런 게임은 결코 정당하지 않으며 정의롭지 않다. 평등은 무엇보다 출발선에서의 평등을 중요시 한다. 기회와 조건의 동등함이 핵심적 내용이다.
한국에서 기회와 조건의 불평등이 극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교육 분야이다. 대졸과 고졸간의 차별은 엄청나다. 능력과 학력의 우열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학벌'이 개인의 능력을 압도하는 것이 한국 사회이다. 충분한 능력이 있어도 학벌이 없으면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모순이 너무나 심하다.
폴 포츠의 감동은 음악보다 '패자부활'의 감동이 더 진하다. 인생 전체에서 한번 패배하면 만회하기 어려운 것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패자부활전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의로운 사회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에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집안 형편상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오늘날 고등학교 졸업생의 수보다 대학 입학정원이 더 많다고 하지만, 이는 현재의 상황이고 우리 사회에서 학력 때문에 심한 차별을 받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논리다. 이러한 것이 우리 사회의 '한'으로 남아 있다.
교육의 문제가 사람에게 한을 맺히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능력은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인생의 출발선에서 기회와 조건의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천명하고 있다. 또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출발선에서 기회와 조건의 평등은 국가가 실현해야 할 의무이다.
한국에서 학벌의 모순은 해결해야 한다. 대학 졸업 여부가 사람의 평가에 크게 작용하는 한 누구에게나 대학에 진학할 기회와 여건이 주어져야 한다. 현재 40대 이상의 사람에게도 다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대학을 완전 자율화하여 입학전형을 다양하게 하고, 시험없이 등록금만 내면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장 모든 대학을 국립으로 무료화할 수는 없더라도 등록금을 최소화하고 국가재정으로 이를 보전하여 돈 때문에 대학진학이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
교육개혁이 근원적 쇄신
현 정부에서도 우리 사회에서의 학벌의 한을 해결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다. 특히 출발선에서의 평등을 실현하는 교육개혁은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교육의 질과 경쟁력 강화가 이런 출발선에서의 평등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대입입시만 붙들고 교육개혁방안이라고 하지 말고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의 근원적인 쇄신이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 ·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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