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을 표방한 '에코 백'(eco bag)이 선풍적인 인기다. 멋 좀 부릴 줄 안다는 젊은 여성들의 어깨엔 고가의 가죽 가방 대신 천으로 된 가방이 걸리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장바구니 용도로 쓸 수 있는 에코 백을 사은품으로 내걸고 있다.
최근 한 백화점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에코 백 디자인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대체 이 급작스러운 인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를 과연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에코 백 유행의 배경을 짚어 보고 진정한 에코 백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재활용 아이템을 제작ㆍ판매하는 전문 업체 '에코파티 메아리'와 '터치포굿'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친환경 가방을 만들어 팔면서도 에코 백의 유행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 지구를 지키는 착한 디자인 '에코파티 메아리'
재단법인 아름다운가게가 운영하는 에코파티 메아리(www.mearry.com)는 재사용이 어려운 일부 의류와, 일상 생활에서 많이 배출되지만 재활용이 잘 안 되는 폐 현수막 등을 가방을 비롯한 소품으로 다시 만들어 파는 브랜드다.
서울 인사동 직영매장과 명동, 압구정동 등지에서 판매되며 미국, 일본, 호주에 수출도 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초청 전시됐다. 에코 백 열풍의 원조인 셈이다.
"유행하는 에코 백은 이미지를 팔고 있을 뿐 진짜 친환경 제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명확한 개념 정립 없이 가벼운 천 소재 가방을 통상적으로 에코 백으로 부르는 요즘이지만, 아름다운가게 재활용디자인 사업부의 구민주 간사에게서 확신에 찬 에코 백의 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지구의 열을 식히는 친환경 소비를 확산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만드는 게 진짜 에코 백이죠."
'지구를 지키는 착한 디자인'을 자신하는 이 업체가 '대표 선수'로 손꼽는 에코 백은 청바지를 재활용한 데님 토트백과 바지 밑단을 잘라 만든 면바지 숄더백, 폐 현수막을 활용한 현수막보조백 등이다.
낡은 청바지에 손잡이와 모서리를 소파 가죽으로 마감한 데님 토트백은 2월 뉴욕현대미술관에 초청ㆍ전시된 8점의 제품 중 하나다. '뉴요커들에게 잘 어울린다'는 현지 평가를 얻으며 기능성뿐 아니라 디자인 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는 게 업체측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최대한 소재의 특징을 살린 게 장점. 바지 밑단의 솔기를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실과 전기를 덜 쓴, 그야말로 제작과정도 친환경적인 제품이라는 얘기다.
업체 특성상 소재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디자인 콘셉트를 잡기 때문에, 현수막보조백의 경우 오래된 듯한 느낌으로 인기를 끄는 빈티지 트렌드와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에코 백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3년차에 접어든 에코파티 메아리도 최근 부쩍 주목을 받고 있다. 재활용 소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이 업체는 이 고무적인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다.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취지로 나온 에코 백이 대량 생산돼 버려진다면 또 다른 환경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민주 간사는 "에코 백이라는 용어에 휘둘리기보다 궁극적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할 때"라면서 "아직은 우리 제품도 디자인을 보고 사는 고객이 더 많아 환경보호의 콘셉트를 이해하는 소비자를 더 늘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 환경+이야기를 담은 '터치포굿'
"에코 백이 싼 가방을 대신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 점이 가장 안타까워요."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20대 4명이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터치포굿(www.touch4good.com) 역시 에코파티 메아리처럼 폐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들어 판다. 수익은 아토피질환 아동에게 기부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에코 백 역시 생산과정에서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제품이다. "에코 백의 유행 덕분에 환경에 관심을 보이는 이가 늘어난 것은 기쁘지만, 친환경의 뜻이 형태나 모양이 아닌 제작 과정과 기획 의도에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는 게 박미현 터치포굿 공동대표의 말이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 온 이들이 가방을 주요 사업품목으로 삼은 이유는 가방이 소비자가 정체성을 담는 아이템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소비자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선택하는 품목이 핸드백지만 정작 가격대 외에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친환경 트렌드가 가방에서부터 비롯된 배경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출발한 터치포굿은 업계의 후발 주자인 만큼 친환경 콘셉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들의 에코 백은 '이야기가 있는 가방'을 지향한다. 현수막을 재활용하는 특성상 모양과 형태는 같아도 패턴 디자인만큼은 모두 다른 ┎걋?되기 때문에 제품에 일일이 이름을 지어 준다. 제품 고유번호와 탄생 증명서도 같이 만든다.
구매자들이 물건마다 소중함을 잊지 않도록 하고 싶어서다.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노력의 일환으로 철도여행 기념스탬프를 받을 수 있는 그림을 넣은 신제품 현수막보조백을 출시할 예정이다. 현수막에만 한정되던 것에서 벗어나 요즘은 지하철 광고판으로 쓰고 버린 타폴린 소재를 활용한 노트북 파우치도 개발 중이다.
터치포굿 관계자들은 에코 백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걸기보다 소비자들이 가볍고 실용적인 가방으로 먼저 인식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예뻐서 산 가방이 현수막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함으로써 소비자 스스로 환경을 돌아보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기업들까지 나서 에코 백 붐을 일으키고 있는 그 최초의 목적은 좋았겠지만 최근엔 마케팅 차원으로 변질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는 박미현 공동대표는 "식품 제조과정의 소비자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바람직한 소비 패턴이 확산되고 있듯 공산품의 제조과정에도 좀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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