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시 구미동 농협 성남유통센터(하나로마트) 2층 회의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들어서자 10평 남짓한 방에서 기다리던 비정규직 근로자와 회사 간부 등 10여명이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비정규직 비중(전직원 342명 중 246명)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 곳을 노동부 장관이 기자단과 함께 찾은 이유는 '비정규직법 관련 현장점검'. "현행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대량 해고는 불 보듯 뻔하다"는 평소 소신을 현장 근로자의 입을 통해 직접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이다.
이 장관 권유로 회의 탁자에 앉은 순서대로 오른쪽부터 9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얘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간담회에 합석한 인사팀장 등 회사 간부를 의식한 듯 비정규직이라면 최우선 희망사항인 '정규직 전환'요구를 내놓지 않았다. 대신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박모씨(과일팀 근무)부터 마지막 발언자인 남모씨까지 9명 모두 "현행법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2년 계약자는 모두 해고한다'는 회사측 입장이 이미 확고하게 전달됐는지,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를 모두 버린 듯 보였다. 실제로 간담회 직전 이 장관을 영접한 이 회사 조충호 사장은 "할인점 비정규직은 단순업무가 대부분"이라며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9명 가운데 2년 계약시점(8월)이 가장 임박한 이모씨(수산물팀)는 "지금 규정대로라면 2년간 근무해 숙련된 내가 해고되고 대신 초보자가 일을 해야 한다"며 "나도 그렇고 회사도 그만큼 손해"라고 말했다.
김모(여ㆍ식자재 판매팀)씨도 "계약 만료가 4개월 남았는데, 마음이 착잡해 일손이 안 잡힌다"고 하소연했다. 가공식품 파트에서 일하는 오모씨는 "우리 회사는 현행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재계약이 힘들 것으로 보여 주위 사람 모두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남모(여)씨는 "나도 세금을 내는 국민"이라며 "2년 동안 아무 준비도 않다가 '발등의 불'이 돼서야 나서는 이유가 뭐냐"고 이 장관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자신의 소신과 일치하는 근로자들의 발언에 만족하던 이 장관은 순간 당황하며 "나는 법이 제정될 때부터 반대했다"고 해명성 발언을 했다.
한편 간담회가 끝나고 장관 일행과 회사 간부가 퇴장한 뒤, 일부 참석자는 기자들에게 "참여정부 말기인 2008년초에는 당시 정부 방침에 따라 60여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적이 있다"며 격세지감을 실감하는 발언을 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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