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 H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가르쳐 주세요." 방과 후 받은 숙제를 하던 중 모르는 문제가 나오자 20여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문수진(22ㆍ여) 선생님을 재촉했다.
아이들은 학교를 나서면 매일 이곳 '꿈나무 공부방'에 모인다.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이나 학원 경력 등을 가진 강사와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숙제는 물론 학년별 교과목 지도, 영어, 수학, 한자, 미술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맞기 때문이다.
15평에 불과한 이 곳 공부방은 사실 5년 동안이나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각종 비품들만 들어찼던 창고였다. 그런 이 곳이 공부방으로 변하자 동네 분위기마저 달라지고 있다. 서로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서고 있고 상인회 등의 기부도 잇따라 사라졌던 이웃의 정도 되살아 나고 있다. 공부방이 동네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방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주민자치위원회 회원들의 노력이 컸다. "처음에는 부모 손이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숙제라도 봐줘야 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창고로 쓰이던 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을 찾아냈죠. 그런데 동의 얻기가 쉽지가 않았어요."
창고를 공부방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주민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맞벌이 부부 등이 많다 보니 헛걸음 하기를 수 백 번이었다. 이에 유문숙(50ㆍ여) 주민자치위원장 등을 필두로 통ㆍ반장들은 20여 일에 걸쳐 밤 10시부터 자정 언저리까지 집집마다 방문해 총 780세대 중 551세대의 동의를 얻어 냈다.
공부방은 이후 구청의 지원으로 리모델링을 거친 끝에 지난달 28일 문을 열었다. 오후 1∼8시 문을 열며 무료다. 버려졌던 창고가 공부방으로 탈바꿈하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자 주변 상인들과 독지가 등의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상가번영회에서는 이틀에 하루 꼴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 김밥, 수박, 팥 빙수 등 간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홍성표(60) 상가번영회장은 "90여 개 가게에서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번갈아 만들고 있다"며 "간식 먹는 모습만 봐도 그저 좋다"고 웃었다.
통ㆍ반장과 부녀회원 등도 아이들의 귀가 안전을 보살피고 있다. 한 건설회사는 선풍기와 정수기, 컴퓨터 등 각종 비품을, 모 출판사와 이름 모를 독지가들도 책을 기증했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매일 오후 7시까지 맡긴다는 맞벌이 주부 최희정(33)씨는 "그 동안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어 불안했는데 공부방이 생겨 너무 기쁘다"면서 "이 아이들이 자라나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포구는 공부방 등에 대한 지역민들의 호응이 높자 이 달 초 성산1동 자치회관에 '방과후 애(愛)' 공부방을 개소하는 등 공부방을 16개 전 동으로 확대키로 했다.
신영섭 마포구청장은 "아이들이 밝게 자라야 우리의 미래도 밝아진다"면서 "어린이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이 같은 공간을 많이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종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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