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인들을 만나면 내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가 '오바마'와 '김현수 선수'이다.
시인을 만나려고 멀리서 찾아왔는데 시와는 관계없는 정치와 야구가 튀어나오니 남자들은 질투를 숨기며 표정관리를 하느라 바쁘고, 어떤 여자는 지루해하고, 어떤 여자들은 까르르 웃는다. 얼마 전에 서울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젊은 여성들에 둘러싸여 나는 또 오바마와 김현수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전혀 다른 두 남자의 공통점을 굳이 들자면, 순수하다는 것. 어려서부터 비열하게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조직에 충실한 한국의 보통 남성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강렬한 개성, 스스럼없는 자기표현, 맑고 풍부한 표정,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며 욕망에 충실한 이들에게만 볼 수 있는 환한 미소에 나는 반했다. 나의 남자 타령이 못마땅해 눈을 홀기던 여자 후배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은 이성에 관심이 없다고. 너도 혹시 그 부류가 아니냐고. 내가 누구를 좋아하면 정말로 좋아하며, 아무도 못 말린다.
버락 오바마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처럼 내용과 형식 모두 나를 만족시키는 책을 최근에 읽은 적이 없다. 아버지의 죽음을 처음 듣는 장면에서 시작되어, 아프리카로 건너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무너져 우는 장면으로 끝나는, 구성도 완벽한 문학작품이었다. 내>
백인 외할머니와 할아버지 옆에서 보낸 청소년기가 특히 내 관심을 끌었다. 흑인을 외손자로 두었으면서도 인적이 드문 밤거리에서 건장한 흑인을 마주치면 두려움에 떨었던 할머니. 자신의 내밀한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 고통을 다루는 절제된 문체에서 작가의 수준이며 인간 됨됨이가 가늠되었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그의 여정을 따라가며, 나의 젊은 날들을 돌아보았다. 그도 나처럼 1961년생,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시대를 살던 동갑생으로서 그의 이야기가 살갑게 다가왔다. 흑과 백의 어느 세계에도 속할 수 없었던 그처럼, 나도 80년대를 회색의 이방인으로 보냈다. 오바마처럼 명징하게 나의 뿌리를 정리하고 싶다는 담대한 소망을 품으며 나는 책을 덮었다.
최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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