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타계한 하야미 마사루 전 일본은행 총재는 일본이 한창 버블붕괴의 후유증을 겪고 있던 시절(1998년~2003년) 중앙은행장으로서 일본의 통화정책을 주도했다. 정부에 맞섰던 소신 있는 총재였다는 평과, 최악의 중앙 은행장이었다는 평이 엇갈리는 인물이다.
하야미 총재가 최악의 중앙 은행장이었다는 오명을 썼던 이유는 하나다. 너무 성급했던 금리인상 때문이었다.
일본경기가 '잃어버린 10년' 이후 차츰 회생기미를 보이자, 그는 당시 글로벌 경기가 IT버블 붕괴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로금리를 포기하고 2000년8월 기습적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는 곧 역효과를 불러왔고 6개월도 채 안돼 일본경기는 재차 침체에 빠져들면서 다시 금리를 인하해야만 했다.
미국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대공황이 오자 미국은 초기에 적극적 완화정책을 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은 6%이던 재할인율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한편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유동성 공급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1930년 3월 공개시장위원회는 더 이상 국채 매입이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1931년 10월에는 1.5%이던 재할인율 금리마저 올렸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사상 최악의 대공황으로 연결됐다.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하는 통화학파들은 당시 충분한 유동성 공급이 있었다면 대공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2차 오일쇼크 이후 1980년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물가가 오르자, 당시 FRB는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금리를 20%까지 올렸으며 이로 인해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장 기간인 16개월 경기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이상의 사례를 통해 경기 침체기 성급한 통화정책 변경은 부작용이 매우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성급한 통화정책 변경이 회복조짐을 보이는 경기를 악화하는 것은 물론, 침체를 장기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
따라서, 향후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조기에 긴축으로의 정책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 출구전략 마련이라는 부분은 말 그대로 향후 계획을 세우는 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보다 확실한 경기회복 시그널이 포착되지 않는 이상 지금의 경기 침체 상황에서 정책변경은 쉽지 않다.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은 빨라야 연말이나 내년초가 될 것이다. 그것도 경기회복이 가시화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국내증시 전반적으로 조정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주식, 채권 시장을 통한 기업 자금 조달이 급증하면서 유동성을 상당부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출구전략을 걱정할 정도로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만큼 하락 압력은 제한적이다. 유동성 랠리 이후 시장은 실적장세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2분기 실적 호전이 기대되는 IT, 화학, 증권, 유통 업종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반면, 유동성 랠리의 가장 큰 수혜주였던 테마성 개별 종목의 경우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성봉 삼성증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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