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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휩쓸리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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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휩쓸리는 사회

입력
2009.06.1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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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를 추모하는 열기가 전국을 뒤덮었다. 대단한 열기였다. 며칠 전에는 6.10 대회가 서울 광장에서 열렸다. 이를 불법집회로 규정한 경찰과 강행하는 참가자들 사이에 상당한 긴장이 감돌았다. 다행히 큰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주최측의 기대와는 달리 그 열기가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저런 사태들을 보고 한국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와 분열 양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면서 언제나 하는 말이 정치인들이 국민의 높아진 기대와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민주주의 성숙에 걸림돌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지식인들이 얼마나 그 말을 스스로 믿고 있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에 우리 나라든 다른 나라든 국민의 수준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국민에서 그 정치가 나오고 그 대통령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을 누가 뽑아주었는가?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뽑아주었다. 그런데 왜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등을 돌리고 촛불집회를 열고 사과하라고 난리를 치는가? 그럴 걸 왜 뽑아주었나?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까닭은 경제를 살려주겠다고 해서였는데, 그러면 경제가 엉망이라서 국민들이 등을 돌렸나?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안 하고 강압적으로 나가서 그렇단다.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그들은 이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를 한 걸음 더 앞서게 만들어줄 줄 알았다는 말인가? 아니, 그건 그만두고 이 대통령이 집권하면 정말 그럴 줄 전혀 몰랐단 말인가?

못 사는 사람들이 경제를 살려준다고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준 건 한국 선거사에 길이 남을 코미디였다. 왜 자기 이익을 모르고 이리저리 쏠리면서 동원 투표를 하는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누가 자기 편이고 누가 다른 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서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경제 살리기에 현혹된 일반 대중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대통령에게 반대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의식화된' 소수파일 것이다. 소수 '진보 좌파'들과 이 사태를 이용해 입지를 높여보려는 기회주의 정치인들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를 잘 아는지 끄떡하지도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저리를 치다가 그 허점을 파고든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유권자들이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서거하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하면서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 미안할 일을 왜 했나?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말 노무현을 지켜주고 싶어 했을까? 노무현 바람, 노무현 죽이기, 경제 살리기 바람, 이명박 바람, 그리고 이제 노무현 추모 바람.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한국인의 변덕스러운 정치문화가 이보다 더 잘 드러날 수는 없다.

한국은 휩쓸리는 사회다. 그게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이 휩쓸리는 열기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고 민주화도 이루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성숙에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당 정치가 제자리를 못 잡고 거리 정치에 휘둘리고 인물 정치에 휘둘리는 것도 휩쓸리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다.

지식인부터 '무지함'벗어나야

변덕스러운 국민, 바람의 정치, 포퓰리즘, 추모 열기, 붉은 악마의 함성, 모두 같은 문화 현상이다. 같은 종족이 좁은 공간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단일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휩쓸리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무지한 것은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앞세우는 가치가 무엇이며, 노 전 대통령이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제대로 안 다음에 휩쓸리더라도 휩쓸리자. 지식인들은 '현명한 국민' 타령에 그만 좀 휩쓸리고, 정말 그렇게 생각할 때에만 그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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