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ㆍ1841~1919)는, 내가 대학시절 자못 애호하여 화첩에서 오려서 책갈피에 끼워가지고 다니던 그림 '책 읽는 여인'(1874)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는, 내 할아버지보다 70년쯤 일찍 태어났다.
무려 5,000여 점의 작품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3ㆍ1독립운동이 벌어지던 기미년에 사망했으니 78년 동안 지상에 존재했다. 르누아르를 낳은 부모는 재봉사와 재단사였다고 한다.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1881ㆍ같은 이름의 소설이 근래 출간되었다)은 르누아르가 평생 가장 중요시한 가치가 뭔지를 보여준다. 인간과 인생의 아름다움이다. 가난과 권태로움을 충분히 겪고 알았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이 행복에 젖어 있는 순간을 포착해 세상에 보여주려 애썼다. 그리하여 전에 없던 인간의 미학을 만들어내며 인상주의의 거장이 되었다.
전시장인 서울시립미술관 2층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심혼을 끌어당기는 작품이 나타난다. '그네'(1876) 속의 여성은 흔들거림 속에서 일순간 멈춰 있고 여성 맞은편의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건 나무에 기댄 수염 기른 남자다. 여성의 표정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참는 것 같지만 볼의 홍조가 모든 말을 대신한다.
또 하나는 르누아르 득의의 역작 '시골무도회'(1883)이다. 춤추는 여인(르누아르의 모델이었다가 나중에 결혼한 알린느 샤리고로 추정)은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에서 본 구면이다. 아, 하는 탄성이 튀어나오게 화사한 색감의 얼굴을 약간 틀고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의 표정은 어쩐지 마냥 행복해하는 것 같지만은 않다.
거기에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 잠시 그대로 멈춘 사람이 알 만한 슬픔이 숨어 있다. 그 슬픔은 심장을 후벼파는 괴로움을 수반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무상을 깨달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대비(大悲)의 아름다운 슬픔이다. 남자는 그 기미를 읽고 그 비밀을 냄새 맡으려는 듯 눈을 감고 상대에 몰입해 있다.
르누아르는 특별히 여성들의 초상을 많이 그렸다. 주문생산이 많았다고는 해도 만년에 집중적으로 그린 '목욕하는 여자들'에서 느껴지는 건 여성의 신비와 관능, 아름다움에 대한 화가의 끝없는 경외심이다.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며 노래를 부르는 노인처럼, 자연 속에 아름답게 동화된 여성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앙리오 부인'(1876), '바느질하는 마리 테레즈 뒤랑 뤼엘'(1882), '풍경 속 여인의 누드'(1883), '보니에르 부인'(1889), '모자 쓴 젊은 여인'(1894), '가스통 베르넴 드 빌레르 부인'(1901), '목욕하는 여인들'(1916) 등등의 그림에서 보듯 르누아르가 일생 동안 여성의 미를 찬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모델이 된 아름다운 여성들이 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건 지금도 얼마든 가능하다. 우리 곁에 르누아르가 없다는 게 다를 뿐이다.
아니, 르누아르는 있다.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고전적인 품격으로, 육감적인 관능으로, 그림 배경 속에 어른거리는 수줍어하며 숨어 있으려는 사람들로, '피아노 치는 소녀들'(1892)로, 눈 속에 동경의 빛을 담고, 동공이 커진 눈으로 우리를 응시하며 존재한다.
사진 속의 르누아르는 시간을 갈무리한 흐린 눈으로, 오그라진 손을 하고 겸손하게 앉아 있지만. 재봉사와 재단사의 아들, 삶의 비루함과 가난을 기워 다시 없을 아름다운 사람의 절경을 빚어냈다.
성석제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