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안에서 지식인에 의해 독점적으로 생산되는 지적 산물이라는 고전적 의미의 지식은 오늘날 각광받지 못하고 있다. 소위 민주화의 바람은 지식 분야에도 거세게 불어닥쳤다. 온라인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성공에서 보듯, 아카데미 바깥의 대중은 이제 지식의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사이버라는 새로운 시공간에서 "우리는 생각한다(Cogitamus), 고로 존재한다"로 그 주어가 바뀌었다. 지식의 배타적 생산ㆍ보급을 거부하는 아래로부터의 지식혁명. 이른바 '집단지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웹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인 1994년 사이버공간이 초래할 지식혁명의 세계를 선구적으로 예견했던 <집단지성> 의 저자 피에르 레비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를 15일 인하대에서 만났다. 집단지성>
교육과학기술부의 연구중심대학(WCU)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 인하대 초빙교수로 두 달간 한국에 머무르는 그는 현대 디지털 혁명에 대한 철학적ㆍ미학적ㆍ인류학적 고찰을 주된 연구과제로 삼고 있는 세계적 인문학자이다.
1956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소르본대에서 과학철학 석사,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8대학의 하이퍼미디어과 교수, 퐁피두센터의 예술이사회 회원 등을 역임했다. 1994년 원저가 나온 <집단지성> 은 2001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출간됐다. 집단지성>
■ 집단지성의 등장
레비 교수는 집단지성의 개념을 개미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지성 이전의 일반적인 인지 능력의 차원에서 볼 때,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바보'스럽지만 그들의 상호활동은 전반적으로 영리한 양상을 보인다.
벌, 돌원숭이, 얼룩말 집단도 마찬가지. 개별로서는 어리석은 생물체들이 '종'으로 집합하면 하나의 머리를 가진 한 마리의 짐승처럼 영리하게 움직인다.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는 것, 여기서 집단지성의 개념이 배태됐다. 다만 인간의 집단지성은 다른 동물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체계화되어 있을 뿐이다.
지식의 공유와 축적을 통해 대중이 지식 생산의 주체가 되는 집단지성은 기실 사이버 시대 이전에도 있었다. 언어의 생성 과정을 떠올려보라. 아무도 어떤 것을 말할 수 없었던 시절,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언어는 한 사람의 천재적 지식인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집단지성을 통해 만들어졌다. "인간은 언어, 문화, 영감, 기술 등의 사회적 코드를 통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지식을 축적, 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며, 그것이 바로 집단지성의 기능"이다.
레비 교수는 인간의 이 같은 집단지성이 인터넷이 가져온 의사소통의 혁신을 통해 폭발적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고도의 정보 네트워크가 구축한 유비쿼터스 환경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지식을 공유하고 축적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있다.
20세기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자를 "지옥"이라고 했지만, 레비 교수는 21세기의 인터넷 세대에게 타자란 "지식을 가진 사람" 혹은 "나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지식을 소유했지만 많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 영역이 서로 겹치지 않는 까닭에, 타자는 경우에 따라서 내 지식을 더 풍부한 것으로 만드는 원천이 될 수 있다."
고로 "지식의 꽃다발로 만나게 될 때" 우리는 고립되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유능해질 수 있다. 이것은 지난 세기들의 역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질적으로 거대한 변화이며, 우리는 현재 한 인류에서 다른 인류로 넘어가는 새로운 진화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것이다.
■ 웹 생태계는 디스토피아?
레비 교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의사소통 도구를 통해 인류가 집단으로 지적이 되는 집단지성의 유토피아를 제시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웹 생태계는 황량하고 암울한 디스토피아일 때가 많다.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지식사이트에는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지식들이 횡행하고 있고, 네이버 '지식iN' 같은 지식의 교환 창고는 상업적 목적을 숨긴 음흉한 댓글들로 점철돼 있다. 지식의 민주화는 매력적인 테제이지만, 진리가 다수결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레비 교수는 그러나 그것을 디스토피아로 보지 않는다. 그는 "지식이란 틀리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유를 통해 진리를 찾아나가는 힘"이라고 말한다. "지식이 완벽하다고 하는 게 오히려 잘못된 개념"이라는 것.
그는 "출판된 책 중에도 엉터리가 많고, 신문에도 잘못된 지식과 정보가 있는데, 이러한 잘못들이 왜 인터넷이라고 해서 허용되지 않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정보의 정확성보다는 함께 그 지식을 구축해나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집단지성은 다수의 힘에 의한 교정이라는 비판적 기능 또한 갖추고 있어 이 같은 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얼마든지 해결 가능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위키피디아가 편집진의 필터링 기능을 보강하고 검증되지 않은 지식에 대해 사전 고지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
■ 지식 독점에 대한 저항
그렇다면 집단지성의 시대, 지식인은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레비 교수는 "오늘날 지식인의 역할은 더 이상 지식을 생산하는 데 있지 않다"며 "이젠 다수가 생산해낸 지식, 즉 집단지성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속한 집단지성을 비평할 수 있는 사유의 도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미래의 지식인들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레비 교수에 따르면 집단지성은 거대자본과 권력의 지식 독점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독점과 폐쇄의 전략을 구사해온 IBM이 21세기 들어 오픈 소스 전략을 채택한 건 집단지성의 시대에는 그것이 자본주의적 이익에 가장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레비 교수는 "집단지성과 함께 작업하고 열린 상태에서 일을 할 때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모든 자본과 권력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예견했다. 집단지성의 열린 시대, 폐쇄와 독점은 멸망에 이르는 길이므로.
● 한국사회의 '집단지성' 논의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답게 집단지성 논의의 다양한 실례를 제공한다. 파이낸셜타임스가 네티즌들의 상호작용을 이용한 지식검색 서비스로 집중 조명한 네이버의 '지식iN'을 비롯해, 시민기자제로 운영됐던 초기의 오마이뉴스, 온라인 토론 광장 다음 아고라 등이 대표적인 집단지성의 사례로 흔히 언급되고 있다.
대중의 지성화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노력들도 있다. 연구공동체 '수유 너머'는 다양한 인문학 강좌들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대중지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대중이 지식의 신체이고 지식을 생산하는 지성"이며 "지식은 어떤 개별 지식인의 천재적 두뇌가 아니라 익명으로 존재하는 여러 두뇌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태어나고 있다"는 게 그들의 선언이다. 연구공동체 다중네트워크센터도 강좌와 세미나를 통해 집단지성의 출현을 위한 밑거름을 다지고 있다.
'대중지성'이라는 말로 곧잘 바꿔 불리는 한국의 집단지성은 전통적인 지식인의 권위가 급격히 추락한 오늘날의 현실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대중지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고병권 '수유 너머' 대표의 <추방과 탈주> 는 한국의 대중지성이 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 추방과>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저항하는 지식인과 역사를 함께해왔다. 1960년대엔 어깨를 겯고 반독재 투쟁을 함께했던 자유주의 지식인이 있었고, 70년대엔 '민중'의 힘에 주목하던 지식인이, 80년대엔 진보적 지식인이 대규모로 등장했다.
그러나 대학이 기업화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삶과 앎을 분리해 앎을 상품으로 전락시킨 아카데미와 지식인은 대중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고, 이제 지성인은 네트워크로 무장한 대중지성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서울시청 앞 광장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에서 대중지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도 한다. 말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거대한 소수자로 출현한 그들은 광장과 거리에서 지식인들이 오래 전에 폐기한 삶과 앎의 일치를 보여주었다는 게 고씨의 분석이다.
하지만 대중지성에 대한 낙관주의를 경계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대중은 과연 지혜로운가, 그들의 선택은 언제나 옳고 신뢰할 만한가, 포퓰리즘과 쏠림 현상은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가.
이 같은 물음엔 분명한 해답이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 네트워크가 가능케 한 집단지성이 21세기 지성과 사유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으리라는 것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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