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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나? 김우창-도정일 교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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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나? 김우창-도정일 교수 대담

입력
2009.06.1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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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이화여대 석좌교수) 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 두 인문학자의 인터뷰는 각각 세상 읽기의 한 진경(珍景)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두 선생의 현안에 대한 인식과 처방은 사뭇 달랐고, 어떤 맥락의 어떤 말들은 서로를 향한, 그리고 동시대인 일반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과 추궁으로 읽히기도 했다. 그래서 두 선생이 만났다. 대담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도정일 선생 사무실에서 3시간 가량 휴식 없이 진행됐다.

# 시국선언… 광장… 소통…

김우창= 이 자리에서는 도 선생 얘기를 주로 듣고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는데 왜,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지 잘 모르겠거든. 내가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게 있다, 또 어쩌면 사람들도 나처럼 자신들이 의식하는 것과는 다른 어려운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예컨대 이 정부의 잘못으로 지적되는 것 가운데 용산 철거민사태가 있죠. 애석한 일이 있었지만, 왜 그런 일이 생겼고 재발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하죠. 먼저 시위 수칙과 시위 대처 수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동시에 철거민에게 합리적 조건이 제시됐느냐, 생계대책은 적절했는가, 이것들이 적절한 사회 환경에서 이뤄졌느냐를 따져야 할 겁니다.

이런 복잡한 문제들은 시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법적으로, 사회적 고려와 현실적 상황 안에서 합리적 방식으로 국회가 풀어야 할 일이죠. 정당방위처럼 직접 행동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복잡한 문제를 다수자의 의견이나 행동만으로 결정하게 되면 법적 질서는 없어집니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고…, 대결적 해결밖에 남지 않겠죠. 얼마 전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 교수 서명을 두고 교수 총원을 거론하며 서울대 전체 의견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는 민주주의와 합리적 질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얘기죠.

그 논리는 서울대 교수 전원이 서명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 뒤에는 5,000만 명의 국민이 존재해요. 100명이든 1,700명이든 자기들 생각을 자기들 관점에서 국민에게 호소한 겁니다. 국민은 동의할지 여부를 결정하죠.

그리고 국민의 의사가 결정되는 곳이 공적 공간입니다. 이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법적으로 구성된 공간입니다. 광장에서 직접행동을 통해 의사를 표현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견을 종합해서 해법을 제도화하는 절차가 중시돼야 합니다.

물론 민주주의는 최고가 아닌 차선입니다만. 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은 이런 겁니다. 시국선언이 잇따르는 상황을 보면 굉장히 다급한 사정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난 이를 사회문제, 이를테면 실업문제 빈부격차 주거문제 등으로 이해하고 있거든요.

도정일= 공감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해방 이후 60년 동안 미성숙 상태입니다. 우리 사회가 겪는 좌절의 큰 책임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용산 참사에서부터 노통 사태에 이르기까지, 또 야당이 MB악법이라고 부르는 법안 처리 문제나 4대강 문제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현안을 두고 국회는 강행과 저항의 논리만 되풀이하고 있어요.

국회의 미성숙은 우리 정당의 역량, 그리고 분권체제를 유지하는 정부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의 공적 공간이 살아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통 서거를 두고 시민들이 보여준 행동과 정서의 배후에는 이런 불만이 쌓여 있다고 봐야 합니다.

쌓인 게 많은 데 풀 길이 없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제단 앞에 나가 신과 소통하는 거고, 또 하나는 광장으로 나가는 것이죠. 그게 저항입니다. 광장 정치라는 말로 비판하고 폄하하기에 앞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좌절이 심각하는 데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또 광장으로 뛰어나간 사람들보다 해법을 봉쇄한 사람들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잇단 교수 시국선언을 두고 현 정부가 싫어서, 반보수여서, 반우익이어서, 좌파여서, 야당을 지지하기 위해서라고 폄하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서명자의 면면을 봐도 보수성향의 인사, 평소 과격행동을 싫어하는 인사가 상당수 있어요. 시국선언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적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파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탈정치적인 의견의 표명이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내가 봐도 이 정부가 잘 한다는 사람은 적고, 못 한다는 사람은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뭘 못한다, 뭘 고쳐야 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합니다. 수십 년 전 얘기지만 한ㆍ일 관계를 두고 정부 사람한테 “사과를 요구하지 말고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사과라는 건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현안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데 그 공방만 한없이 되풀이하는 건 무의미하죠. 이번 경우도 그렇다고 봐요.

도= 시국선언문을 살펴보면 그 말미에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이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자결사태에 대해, 검찰권의 오ㆍ남용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게 대표적이죠.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시됐고,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서 피의자 인권에 심각한 피해를 줬어요. 표적수사 의혹, 정치적 동기에 따른 외압 의혹도 엄연하고요.

검찰 독립ㆍ중립화도 요구사항 중 하나죠. 또 시민 기본권에 대한 침해와 권력남용 중단 요구가 있습니다. 평화 집회를 불허하고, 과잉 진압하고, 경찰이 유모차를 포위해서 위협하는 등 기본권 침해 사례도 많아요. 무엇보다 이 정부의 오만이 지적돼야 할 겁니다.

국정 주요 현안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거죠. 바로 소통의 요구입니다. 남북관계만 해도 그렇죠. 6ㆍ15선언과 10ㆍ4선언 등 전임 두 정권이 만들어놓은 남북관계의 정책기조가 있는데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저버렸어요.

김= 원칙적으로 다 찬성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정말 그런가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가령, 노 전대통령 수사의 경우 검찰에 문제가 있고 개선할 게 많지요.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린 것도 문제지만, 언론에서 큰 관심을 보이니까 그렇게 된 측면도 있을 겁니다. 단기적으로 결과를 내려고 서두른 것도 문제예요.

최근 뉴스를 보니까 프랑스에서 ‘서래마을 사건’ 피의자 재판이 시작되더군요. 3년 전 사건 아닙니까. 그만큼 오래, 신중히 조사했다는 얘기일 겁니다. 정치적 압력 여부는 조사를 해봐야 알 일이지만, 설사 그런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쉽게 잘잘못을 말하기는 어려워요.

수사 외압이 없는 게 좋겠지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검찰 입장에서는 사안을 수사할 도리밖에 없죠. 외압에 의한 표적수사여서 잘못이라고 한다면,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세상에 나쁜 사람이 많은데 나만 붙잡혀 재수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

집회 자유의 문제는 공공질서와의 관계 속에서 고려돼야 합니다. 얼마 전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장 주변에서 반대시위가 있었는데 경찰과 대치 중에 국회의원 한 사람이 체포됐어요. 단순히 경찰 저지선을 넘어섰기 때문이었죠.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는 공공질서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의 집회 불허를 두고 권력 남용이라 말하기에 앞서 우리의 집회 관습이 어떠했는지도 성찰해야 합니다.

두드려 부수자? 좋아요. 의견이 분명하고 그것이 옳다고 판단되면 나도 거기에 찬성할 수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집회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인 것은 엄연하지만 나는 민주주의보다 사람이 사는 질서, 생업을 유지하면서 먹고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통의 문제가 요즘 중요한 이슈죠. 대통령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소통하라고들 하는데, ‘저 사람(MB)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봐요. 광장에 나와서 얘기하라는 걸까? 늘 그런 식이면 대통령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것이고, 그런 방식이 옳지도 않죠. 최근 BBC 뉴스에 러시아 이야기가 보도됐어요.

푸틴이 러시아의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인 일리아 글라즈노프(79) 집에 가서는 어떤 작품을 가리키며 “기사의 칼이 짧아서 소시지나 겨우 자르겠네”라고 했는데 글라즈노프가 “예, 고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이건 바른 소통이 아니죠. 푸틴이 또 어떤 올리가크(재벌)를 불러서 “함부로 노동자를 해직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라”며 펜을 던졌다는데, 국민들이 그걸 좋아한다고 그래요.

우리 대통령도 그랬으면 좋아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인기 전술일 순 있지만 공공질서를 중시하는 건 아니죠. 법을 제정하든지 해야죠. 그런 방식이 용인된다면 다른 사람 불러서 돈이나 다른 것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남북문제도 지금의 대결 국면을 이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일방적인 얘기인 것 같아요. 남북문제에 관한 자료들은 오래 전부터 챙겨 보는데, 독일이나 미국쪽 자료를 보면 이번 사태가 남측의 강경태세 때문이라기보다는 북한 내부의 정책추구 방향이 그런 걸 거라는 분석이 많아요.

물론 누가 옳은진 알 수 없죠. 걱정하고 의견을 낼 순 있지만, 판단은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무조건 ‘이명박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장황하게 얘길 했는데, 요지는 내가 모든 사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게 아니라,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인 만큼 다 함께 고민하면서 해법을 찾자는 얘길 드리고 싶은 겁니다. 지금까지 줄곧 이어진 잘못도 있고, 이 정부가 잘못한 것도 있고, 또 이 정부가 잘 해도 안 되는 것도 있다고 봐요.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모색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태도이지, 대원칙만 앞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공허하게 생각돼요.

우리는 왜 이?타협이 어려울까 가끔 생각해보는데, 내 생각엔 그만큼 우리 사회에 긴장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문제가 많고 불만이 쌓이니 여유를 가지고 생각할 공간이 안 생기나 보다 싶은 거죠. 난 지식인들이,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요.

김우창 선생은 작정한 듯 나직한 음성으로 근 30분 동안 시국선언의 현안들에 대해 조목조목 견해를 피력했다. 도정일 선생은 지그시 눈을 내려 뜬 채 흔들림 없이 경청했고, 되짚어야겠다 싶은 대목들은 추려 메모했다.

이어진 대담의 양상은 한층 팽팽해졌다. 상대의 말을 끊고 들어섰다가 서둘러 발을 빼는가 하면, 어떤 대목에서는 따지듯 반문했다. 과열 기미가 보이면 웃음 섞인 농으로 긴장을 늦추기도 했다.

#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도= 노통 관련 검찰 조사를 두고 선언문에서 시비한 것은 수사 동기뿐 아니라, 검찰권의 오ㆍ남용 문제입니다.

김= 그건 조사를 해야겠죠.

도=그런 사례가 있으면 검찰 중립화든 개혁이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요구였고요. 지금 다수 국민은…

김= 나는 도 선생이 ‘다수 국민’이라는 말은 안 쓰셨으면 좋겠어. 투표해보기 전에는 몰라 그건.

도= 며칠 전에 한 여론조사를 보니까 교수 시국선언에 대한 국민 지지가 60%로 나왔더군요. 그 정도면 ‘다수’라고 해도 되죠?( )

김= 그건 인정할 수 있어요.( )

도= 국민과 정부의 소통 문제는 해방 이후 60년간의 고질이지만, 군사정부 시절을 빼곤 지금처럼 숨막히게 막혔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김= 막힌 소통의 내용이 뭔데요?

도=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소위 ‘친북좌파’ 정권이 다시는 들어설 수 없도록 좌파 세력을 이 땅에서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 지금 보수우익의 야심찬 기획입니다. 이건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이기도 합니다. 그게 소위 좌파로 분류되는 인사나 조직에 대한 철저한 압박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는 매카시즘이고 마녀사냥이지 소통도 사회통합도 아니에요. 우리 사회도 그렇고 세계 전체를 보아도 지금은 다양성과 복잡성의 수준이 한참 높아진 시대입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도 큰 틀에서 좌파정권입니다. 우파가 소중하다면 좌파도 소중합니다

김= 구체적으로 뭘 했어요? 반정부 신문을 폐간한 것도 아니고….

도= 전임 정권이 임명한 문화예술계 기관장들을 다 쫓아낸 게 대표적 예죠.

김= 그건 사실인데…, 노통도 그렇게 했어요.

도= 전임 정부가 그렇게 했으니 지금도 그래도 된다는 건 옳지 않죠.

김= 난 노통이 그렇게 할 때 옹호하는 얘기를 여러 번 했어요. 신문에도 썼고.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정책을 수행하겠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다만 그 사람들이 국가에 도움이 되느냐를 판단해야지.

이 정부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내보낸 건 잘못하는 일이죠. 하지만 그것도 크게 문제 삼기 힘든 건 노통도 그랬거든.( ) 이것도 잘못됐고 저것도 잘못됐는데 이것만 큰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 건 불공정해요.

도= 정권이 갈릴 때마다 전부 물갈이를 하자는 얘기는 아니시죠? 지금 보세요. 대숙청의 시기거든요. 한예종 사태는 또 어떤가요. 서사창작과 없애라, 이론공부는 왜 해…, 구체적인 학사에까지 개입해서 한예종을 청소하려 들고 있죠. 실적, 운영 부실을 말하지만 객관적 자료를 보면 납득이 안 가요. 이념적 접근인 거죠. 이게 악순환이라면 그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김= 잠깐 녹음기를 끄고 얘기를 좀 하죠.

선생들은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당신의 견해에 대한 이해를 도울 만한 각자의 구체적 경험과 최근 사태와 관련 있는 문화계 지인들의 근황 등을 전했다. 그러는 동안 몇 차례 유쾌하다고 만은 할 수 없는 조용한 공감의 웃음이 번지기도 했다.

대화의 중요한 물꼬는 거창한 당위보다 사소한 디테일에서, 관객의 시선 바깥에서, 녹음기가 꺼진 뒤에 트이기도 하는 법이다.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 "지금은 대숙청의 시기"

도=(그래도) 전 이 정부에 기대를 걸었어요. 실용을 표방했거든. 실리가 있다면 이념과 노선의 차이까지 포용하는 게 실용이잖아요. 그런데 이념적으로 접근해서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내쫓는 거나 이런 저런 허술한 명분으로 한예종을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실망스러워요.

김= 나쁜 사람들이 명분 안 내세우는 경우 한 번이라도 봤습니까. 명분은 디스카운트하고 들어야지.( ) 전두환 구호가 뭐예요. 정의사회 구현 아닙니까. 나도 도 선생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이지만 이렇게 그냥 일방적으로 성명 내면서 대응할 성질의 것으로 보기에는 사태가 훨씬 복잡해요.

난 우리처럼 양분된 사회가 없는 것 같아요. 그것?나는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사회의 양분 현상을 반영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거 개선하지 않으면 아무리 담론을 좋게 하려고 해도 힘들죠.

도= 오랜 세월동안 공공성이나 공익은 제쳐 두고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민감해지도록 훈련된 측면이 있지요.

김=실용도 그래요. 우리에게 의료제도나 건강보험제도 등 여러 복지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된 건 거의 없죠.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시작해놓은 건데, 따지고 보면 이 정부가 그걸 뒤집어 엎은 건 없어. 선거 때 만든 구호야 반은 가짜지.

그보다 구체적인 사안을 봐야 하는 거고…. 누가 잘했냐 따지면 싸움이 나죠. 남북관계도 평화롭게 살자는 게 지상과제잖아요. 우리 사회도 그러자는 겁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선 싸움을 말리고 봐야 해요.

도=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북측 내부 사정이야 어떻든 적어도 남측이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이념적 입장을 떠나 최소한 두 선언의 정신은 계승한다고 밝혔어도 지금처럼 경직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봐요. 지난 10년을 두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잖아요. 그 10년의 성과는 보지도 않고….

김= 그건 ‘어떤’ 사람들이 하는 레토릭이죠. 양 쪽에 다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으니까.

대담은 정리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첨예한 대립의 국면에서 중립은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떻게 적극적 가치로 고양될 수 있는지 견해를 밝히고, 각자 덧붙이고 싶은 말들을 하기로 했다.

# "함께 살아야 한다"

도= 많은 얘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인문학자는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자는 공정성의 원칙을 포기할 수 없지요. 존 롤즈의 주장대로 공정성은 정의의 핵심입니다.

저는 누구 편에서라기보다는 공정성의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중립이죠. 그러나 맥없이 그냥 가운데 있는 중립이 아니라 좌든 우든 공정성과 양심의 편으로 가까이 서려고 하는 그런 중립입니다.

김= 동감입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정치학자들이 할 얘긴데…. 다만 정치학자는 많은 걸 이념과 권력관계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난 도 선생이 책 읽는 사회 사업을 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인문학자는 게을러서 이런 일 하기 어렵거든.

우리 견해의 차이는, 도 선생은 보다 전체적이고 이념적인 차원에서 얘기하고 나는 구체적인 사안에 붙여 잘 생각해보자는 입장인 것 같아요. 도 선생은 행동적 정열이 많은 분이고 나는 게을러서 가만히 앉아서 이런저런 궁리나 하니까 생기는 차이일 겁니다.

도= 중립성과 불편부당성은 인간이 도달하기 힘든 저 먼 곳에 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자신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이해관계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진 못하겠지만 최대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해야겠죠. 교수사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 사회는 객관성, 진실, 도덕적 고양과 같은 가치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회가 잔인해지고 비열해지고 또 그래야만 살아 남는다는 의식이 팽배해서…, 도덕의 전반적인 하향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어느 사회영역에서 활동하든 우리 사회의 추락을 막아야 합니다.

품위를 지키면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그러면서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덜 고통스러울 테니까요. 정치적 갈등이 심할수록 도덕적 능력, 정신적 능력의 추락이 현저히 발생하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죠. 인문학이 해야 할 일이 뭔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 공감합니다. 60,70년대 서구라파나 미국 학생운동이 성할 때 중립을 부정하는 말들이 많았어요. 가치중립적 사회과학은 있을 수 없다는 거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살면서 의견이 바뀌었어요. 중립은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는 투쟁적 과거가 많아 ‘중립’ 하면 ‘나 몰라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좌파 학자인 하버마스도 윤리적 중립이 법ㆍ제도의 기본이라고 말하잖아요. 분열이 심할 때는 옳고 그름을 가르기 전에 걱정하고 고민하면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이걸 키워가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의 책임이라 여겨요. 사실 학문의 세계란 자기 세계에 갇혀 소통의 기회가 별로 없죠. 그래서 뉴스매체의 객관성이 중요한데, 우리 언론은 좌나 우로 지나치게 치우쳐있어요. 인간을 좀 더 믿고 중립적으로 사실을 밝히면 사람들이 판단해주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비교적 추상적 명제를 늘 염두에 두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싸움이 벌어집니다. 양심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곤란한 것 같아요. 김현승 시인이“사람들이 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칼은 칼집 속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어요.

도덕이라는 것, 양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 심판하는 데 휘두르기보다 각자 자기의 행동규범으로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내 자신이 나의 행복을 위해, 자기실현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자는 거죠. 이런 게 사회일반의 윤리감각으로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른 저녁의 대학로는 늘 그렇듯 부산하고 소란스러웠고, 우리는 거리의 가쁜 소음에 쫓기듯 식당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앞장 서는 도정일 선생께 김우창 선생은 “검소한 데로 가시자”고 말했고, 식사는 말처럼 검소했다.

정리=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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