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를 앞둔 산업은행의 몸이 너무 무거워 졌다.
금융위기 이후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기업들의 매각이 잇따라 연기된 데 이어, 올해는 재무구조가 나빠진 재벌 그룹 계열사를 사모펀드(PEF)를 통해 매입함에 따라 자산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민영화를 위해선 몸집이 가볍고 소유구조가 단순해져야 할 텐데, 거꾸로 매각 대상 기업과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을 줄줄이 거느리게 된 것이다.
커지는 덩치
산은은 현재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대우인터내셔널 한국항공우주산업 등의 대주주 혹은 주요주주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에 대한 출자전환이 이뤄지면서, 산은이 이들 굵직한 대기업들의 주주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산은이야말로 국내 최대 재벌그룹 중 하나"란 말까지 나왔을 정도.
원래 계획대로라면 산은은 이들 기업 지분을 일찌감치 처분했어야 했다. 민영화를 하면서 대기업 지분을 갖고 있는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무산된 데 이어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도 지분매각이 연기됐다. 산은으로선 적어도 시장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이들 대기업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어야 할 형편이다.
산은은 지분을 보유한 기업 뿐 아니라, 주채권 관계의 기업도 많다. 최근 대기업 구조조정에서 불합격처분을 받아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은 9개 그룹사 중 6개가 산은에 몰려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동부그룹 GM대우 등 시장이 주시하는 대기업은 한결같이 산은이 주채권은행이다. 오죽하면 "대기업 구조조정의 칼자루는 사실상 산은이 쥐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그만큼 산은으로선 떠안은 '잠재부실위험'이 크고, 도와줘야 할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9월경 산은은 '산은지주+정책금융공사' 체제로 민영화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산은은 한 손에는 매각대상기업들을, 다른 한손에 주채권거래 기업들을 수없이 쥐고 있어 금융권에선 '과연 민영화 자체가 가능할까'란 의문마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커지는 영향력
커지는 것은 몸집만이 아니다. 지분을 가진 기업도 많고, 주채권 거래기업도 많다보니, 기본적으로 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주요 대기업과의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과정에서 산은은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락펴락 할 정도의 강한 영향력을 보여줬다.
바로 이 점에서 '민영화 이후 산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금산분리규제 완화에 따라 향후 민영화된 산은을 특정 기업 혹은 산업자본이 인수할 경우, 이익충돌 및 불공정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조만간 열릴 국회에서 금산분리 완화 기준을 최근 통과된 은행법 수준으로 높이는 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되면 산은 지주의 지분을 특정기업이 10%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된다"며 "이 경우 산은을 지배하는 자가 수많은 기업을 간접 지배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즉, 산은을 특정기업이 소유할 경우 이 기업은 산은이 지분을 가진 대우조선이나 하이닉스, 거래관계의 금호 동부까지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향후 정책금융공사와 산은지주가 각각 어떤 자산을 나눠 갖게 될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매각이나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자산은 산은에 남긴다는 원칙 외에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 "9월까지 많이 남았으니 일일이 따져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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