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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노무현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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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노무현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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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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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초겨울, 원로 역사학자 한 분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대선 정국이 달아오르던 무렵이니 자연스럽게 대통령 선거가 화제에 올랐다. 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분은 "대통령쯤 되려면 종교는 알아야지"하면서 노무현 후보에 대한 거부감을 내비쳤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은 1986년 송기인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아 '유스토'란 세례명을 얻었지만 영세만 받았을 뿐 성당에는 잘 나가지 않았다. 평소 프로필을 쓸 때도 '무교'로 썼다.

'무늬'와 '속내'는 달라

종교란 무엇인가. 교회가 정한 예식에 따라 세례를 받고 신앙을 고백하면 그게 종교일까? 19세기 영국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은 <의상철학> 에서 교회의 온갖 형식을 '히브리의 낡은 옷'이라고 규정짓는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종교의 '무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란 사람이 '진실로 믿고 있는 것' 즉 '속내'이며 그것은 '삶 자체'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란 묘한 존재여서 '무늬'를 '속내'와 동일시하려는 성향이 있다. 중세 말기 신항로 개척에 나섰던 유럽 항해자들이 '복음 전파'의 무늬를 내걸었지만 그들의 속내가 '탐욕'이었음을 우리는 그들의 삶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 송기인 신부는 "내가 성당에 나오지도 않을 사람에게 세례를 준 셈이 됐다. 성당에 나오시라"고 권유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신부님이 제게 성당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한 송 신부의 말은 칼라일의 관점과 일치한다. '삶 자체'야 말로 사람이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무늬뿐인 종교'보다는 '무늬 없는 도덕성'이 더 낫다는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역사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그를 일방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많지만, 폄하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결코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못했으나 그 도덕적 흠결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던짐으로써 역설적으로 '목숨보다 도덕성을 소중하게 여긴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후보 시절 보수진영조차 우려할 정도로 축재 과정에서 갖가지 탈법과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이었던 김진홍 목사는 이 후보의 '도덕성 투명성'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 후보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싶어도 타락할 수 없는 체질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화답하듯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9일 '이명박 정부는 도덕적 약점 없이 출범한 정권'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한글사전> 에 '도덕'이 어떻게 풀이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김 목사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하여'라는 전자우편에서 "감당할 자질이나 능력이 없으면 굳이 지도자에 오르려 들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적에게 독설을 퍼붓는 정치인을 연상케 한다. 그의 말에는 자신이 지지한 이 대통령에게 '자질과 능력'이 있다는 확신이 넘친다. 필경 '무늬'를 '자질과 능력'으로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성과 감동이 중요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온갖 불법·비리·탈법을 저질러 세인의 지탄을 받는 인사도 타성적인 일요일 교회 출석과 다년간의 주차 안내봉사 등으로 '자질과 능력'을 입증하면 무난히 장로 직분에 오르는 풍토에서 이런 언행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문제는 '무늬'로는 진정성을 보여줄 수도, 감동을 자아낼 수도 없다는 점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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