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도 그렇고, 황영조도 그렇고, 임춘애도 그렇고, 요즘은 축구선수 박지성까지… 한국인의 DNA에는 달리기에 관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 특별한 유전자가 400년 전 전란의 세월과 만나 펼쳐지는, 무척 흥미로운 역사 만화가 될 겁니다."
부천만화정보센터가 1억원의 지원금을 걸고 한국일보와 함께 공모한 '2009 기전문화원형 만화 창작화사업'에서 달리기를 소재로 한 장편만화 '물위를 뛰다'(가제)로 당선자로 결정된 중견 만화가 전세훈(47)씨는 만화계에서 '소재의 귀재'로 불린다.
1992년 데뷔작 '노노보이'에서 빙의(憑依)라는 낯선 소재를 택한 데서부터 시작해, 스포츠신문에 무려 7년 동안 연재한 축구 이야기 '슈팅', 지난해 대한민국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한 관상 이야기 '신의 가면' 등등, 전씨의 관심은 전방위로 뻗어있다.
전씨는 그러나 '물위를 뛰다'에 대해 "소재의 독특함보다는 스토리의 진정성에 비중을 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 땀내가 많이 나는 만화를 그려왔어요. 열정적인 록커, 축구선수 등 제 작품의 주인공에겐 공통적으로 열정의 코드가 담겨 있죠. 제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그런 에너지예요. 열심히 사는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채찍질할 수 있다면, 그게 만화를 보는 즐거움이 아닐까요."
'물위를 뛰다'는 떡장수의 아들 '개떡'이 뛰어난 달리기 실력으로 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우는 가상의 역사를 줄거리로 삼고 있다. 경기 지역의 문화 원형을 소재로 삼아야 하는 기전문화원형사업의 취지에 맞게 해유령 전첩과 행주대첩(1592), 벽제관 전투(1593) 등 400여년 전 경기 서북부의 피튀기는 전장이 무대로 펼쳐진다.
개떡이 갈댓잎 하나로 물 위를 건너는 전설의 경신술(輕身術) 혹은 경공법(輕功法)인 '일위도강(一葦渡江)'을 익히는 과정, 전투를 승리를 이끌고도 처형을 당했던 장수 신각(?~1592)의 사연 등 픽션과 실화를 섞어 임진왜란의 비사(秘史)를 창조해낸다.
기전문화원형사업은 경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대중문화 매체인 만화를 통해 널리 알리는 사업으로 지난해 처음 시작됐다. 1회 당선작은 예술적 작품 스타일로 호평을 받은 만화가 권가야씨의 '남한산성'이었다.
올해 제2회 당선자인 전씨는 훨씬 대중성 있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심사위원단은 "만화적 상상력과 차별화된 캐릭터,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이 절묘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물위를 뛰다'는 7월부터 본보 지면을 통해 연재될 예정이다.
"콘티만 보면 무거운 역사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사회적 색깔을 강조하기보다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요."
전씨의 말처럼 그가 공개한 콘티의 한 장면만 봐도 호기심이 솟는다. "개떡은 운명을 바꾸려는 의지나 민족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순박한 심성을 가진 인물이에요. 달리기에 열중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그것밖에 잘 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죠. 조선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할까요. 지극히 순박한 인물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다 뜻하지 않게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약력
▲ 1962년 충남 금산 출생
▲ 경희대 조경학과 졸업
▲ 2000년 한국만화가협회 이사
▲ 2006년 '슈팅' 으로 청소년우수만화상 수상
▲ 2007년 '신의 가면' 으로 대한민국만화대상 우수상 수상
유상호 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