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말 서울 시내 종묘. 흰개미 탐지견 '보람이'와 '우리'가 바삐 움직이며 코를 들이민다. 잠시 후 보람이가 나무 기둥 앞에 멈춰 서더니 기둥을 노려본다. 뒤를 따르던 문화재연구소 관계자가 그곳을 들여 다 본다. 역시 흰개미들이 나무를 갈아먹은 흔적을 찾았다.
보람이와 우리가 또 한 건 해낸 것이다. 이전에는 흰개미가 안쪽에서 나무를 몇 달 동안 갈아먹은 다음에야 볼 수 있었기에 예방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흰개미가 내뿜는 페르몬 향을 맡으며 1년 넘게 훈련으로 다져진 보람이와 우리의 코 앞에서는 꼼짝달싹 할 수 없다.
보람이와 우리는 삼성생명 소속이다. 삼성생명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2006년부터 보람이와 우리를 탐지견 센터에서 치밀히 훈련시켰다. 그리고 2007년 10월 문화재청과 '1문화재 1지킴이'협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했다. 탐지견들은 지금까지 전국 수 십 곳 문화재를 누비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목조 문화재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인 흰개미 피해가 늘고 있다"며 "보람이와 우리 덕분에 흰개미 피해가 크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엔 끝이 없다. 이젠 땀만 흘리는 단순봉사의 틀을 넘어, 꽤 전문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문화재 지킴이 역할까지 자임하고 나섰다. 특히 기업들은 축적된 전문기술을 활용해 문화재보호에 나서는 '특화봉사'를 통해,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리조트는 골프장 관리 실력을 발휘해 2005년부터 경기 화성의 융륭(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무덤)과 건릉(아들 정조와 효의왕후 무덤)을 관리하고 있다. 용인의 프라자골프장
코스관리팀이 능 주변 잔디의 물빠짐과 통기 문제, 비료 시비 등을 꼼꼼히 따져 자료화 했고 틈만 나면 능을 찾아 주변의 잔디를 깎고 흙을 다듬는다. 아예 7,000만원이 넘는 잔디 관리 기계를 능 주변에 배치하기도 했다. 한화리조트의 잔디 사랑 덕분에 두 능은 다음달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해 실사팀이 와서 기업이 이리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을 정도"였다며 "최종 보고서에 기업의 노력이 돋보인다고 극찬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세계적 철 보존처리 기술을 활용해 녹이 슬어 언제 쓰러질 지 몰랐던 경기 파주 장단의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경의선 증기기관차 화통(등록문화재 제78호)을 살려냈다. 무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모두 8억원이 넘는 비용이 도는 대공사. 비무장지대에 있는 화통을 받침대를 이용해 임진각 근처로 옮기는 데만 1억5,000만원 이상이 들었다.
그리고 포스코 내 연구소와 경주대 연구진이 꼬박 1년 넘는 기간 동안 녹을 없애고 부식 방지 처리를 했다. 더 이상 녹이 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새로 태어난 화통은 25일 도라산 평화공원에 전시될 예정이다. 포스코는 철 성분이 들어간 철부처, 철당간, 철종, 동종 등 국가지정 금속문화재 69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주 전공인'가스 안전'을 활용하고 있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 전남 순천 낙안읍성 등 전통 가옥이 모여 있는 마을의 가스를 무료로 점검하고 있다. 일반 도시가스와 달리 민속마을에서 쓰는 LPG는 안전 점검 의무가 없어 화재 등 사고에 취약하기 때문.
네이게이션 제작 업체 팅크웨어는 문화재 위치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LG하우시스는 독도의 펜스, 계단 등 시설물을 친환경 소재로 만든 자사의 제품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05년 문화재 보호를 위해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손을 잡아보자는 뜻에서 '1문화재 1지킴이'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참여 기업은 29개. 그러나 갈수록 그 참여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문화재청 강임산 전문위원은 "기업들이 스스로 나서 문화재를 지키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큰 관심을 갖게 됐다"라며 "직원들 역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일을 한다는 생각에 참여율도 높고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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