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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카지노 마케터 윤주식·한창훈·최일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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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카지노 마케터 윤주식·한창훈·최일학씨

입력
2009.06.1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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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업무를 각각 한마디로 표현하면?

대답: "목마른 사슴을 시냇가로 이끄는 인도자", "몸과 마음을 파는 그림자", "그분을 위한 카멜레온."

웬걸 더 알쏭달쏭하다. 같은 일에 대한 설명이 이리 다를 수 있나. 경건한 것 같기도, 불쌍한 것 같기도, 줏대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질문자의 헷갈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자들의 목소리만큼은 묵직하다.

판단을 더욱 흐릿하게 하는 힌트가 있다. 이들은 카지노에서 일한다. 폭력 음모 배신 패가망신 등의 무시무시한 단어와 이미지가 머리 속을 채운다면 몹쓸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이다. 당사자들은 "어떤 분야보다 투명한 사업"이라고 반박한다. 하긴 이제 지긋지긋한 오해를 풀어줄 때도 됐다.

아마 '카지노의 꽃' 딜러를 떠올리기 쉬울 텐데, 인도자 그림자 등의 대답과는 좀체 어울리지 않는다. 낯설 법하지만 대답자들은 '카지노 마케터'다. 외국인전용카지노 파라다이스워커힐서울의 윤주식(담당 중화권) 한창훈(일본) 부장, 최일학(주한 외국인) 과장의 대답을 바탕으로 카지노 마케터의 정체를 한 올 한 올 벗겨보자.

누가 목마른 사슴인가

마케터(marketer)는 '판매용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뜻한다. 의미에 딴죽을 걸 여지가 없다. 그러나 카지노라면 사뭇 달라진다. '고객을 카지노로 유인(?)해 도박을 하게 하고 종국엔 돈을 잃게 하는 사람'으로 곡해할 수도 있기 때문. 솔직히 카지노가 시냇가는커녕 오히려 헤어날 수 없는 늪이 되는 사례가 또 얼마나 많은가.

오해의 산물이란다. "고객이 오락과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국내에 있는 동안 모든 일정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게 마케터의 역할"(윤 부장)이기 때문. 오락은 전재산을 던지는 도박과 다르고, 돈을 잃고 따는 건 고객의 책임이란 설명도 따랐다. 일면 매정하게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고객의 면면이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해외에서 방귀깨나 뀌는 유지거나 돈깨나 세는 갑부, 재산은 넘치는데 나이 들어 소일거리 없는 은퇴자가 대부분이다. 보통사람에겐 거액이 이들에겐 쌈짓돈일 수도 있으니 '도박'이란 표현은 좀 과하다. 이들에게 '목마름'이란 돈이 아니라 즐거움일 테니 잃은 돈은 여가 비용쯤으로 여겨도 되겠다.

더구나 외국인 고객 아닌가. 거창하게 따지면 카지노 마케터는 외화획득의 선봉이다. 역으로 해당국에선 한국 카지노 마케터의 활약이 외화유출로 비쳐지니 달가울 리 없다. 윤 부장은 "해외진출 초기엔 통제가 심해 사무소도 못 내고 가방 하나, 전화번호 하나 달랑 들고 고객을 찾아 다녔다"고 했다.

물론 제 분수를 뛰어넘는 고객도 더러 있다. 한 부장은 "고객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성격 및 패턴까지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베팅 금액이 평소보다 늘거나 조짐이 이상하면 말리기도 한다"고 했다. 사슴이 자칫 길을 잃으면 경고도 한다는 얘기다.

몸과 마음까지 팔아야 하나

카지노 마케터는 비유하면 수행비서다. 고객이 전화로 요구사항을 간단히 전하면 항공권 예약, 픽업 서비스, 숙식 해결 등 구체적인 일정을 짜준다. 골프나 쇼핑 건강검진 성형관광도 챙긴다. 숙식과 항공권은 기본이고, 등급(게임실적)에 따라 수백만원의 항공료부터 100만원짜리 호텔 스위트룸 숙박까지 공짜로 누리는 VIP도 있단다.

일정관리나 비용산출은 시스템(기계)이 사람(마케터)보다 오히려 정확하지 않을까. 실제 카지노 내부에서도 "등급을 따져 집행하는 시스템만 갖추면 아르바이트를 써도 무방할 것 같다"는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존재이유는 정(情)이다. 각양각색 취향의 고객을 밀착관리하기위해선 인간의 숨결과 살결이 오롯이 스며들어야 한다. "빨간 색을 싫어하는 고객에겐 음료조차도 다른 색을 준비하고, 당뇨가 있다면 설탕은 무조건 빼야 하고"(한), "고객의 아들이 갑자기 요청한 사격연습도 원 없이 시켜줘야 하고"(윤), "게임 하다 쓰러진 고객을 들쳐 업고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시키고 간호까지 도맡는"(최 과장) 일은 결코 기계가 할 수 없기 때문.

그뿐이랴. 고객들은 게임만 하러 오는 게 아니다. "고객들의 무역거래를 성사시켜주려고 관련공부도 열심히 하고(윤)", "부동산 매매나 사업 중개도 해결해주고", "자녀 유학이나 결혼 상담이 들어오면 발 품팔아 조사까지 해야"(최) 한단다.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시시콜콜 세세한 부분까지 몸으로 때우고, 고객의 가려운 곳을 마음으로 긁어줘야 하는 셈. 이쯤 되면 '몸과 마음을 판다'는 얘기가 절로 나올 법하다. 진심은 통하는 터라 고객들은 호의와 친절을 결코 잊지않고 다시 찾는다고 한다. 고객 덕에 다양한 배움을 얻고, 새로운 세상경험도 맘껏 누린다. 모두 에누리없이 보람이자 자부심이다.

왜 카멜레온이 되는가

제 아무리 갑부라도 돈을 잃으면 기분이 나쁜 게 인지상정. 특히 손실이 도를 넘어서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잃은 만큼 보상 받기 위해 고가의 와인 무료 제공 등 서비스 한도가 넘어가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사기가 아니냐고 시비를 걸거나 과음 뒤 행패를 부리는 사례도 있다.

카지노 마케터는 이 부분도 헤아려 고객 입장으로 즉각 변신해야 한다. 잃은 돈을 돌려줄 순 없지만 상한 맘을 되돌리는 일은 마케터의 몫이기 때문이다. 가끔 욕도 먹고 멱살도 잡히지만 한 색깔(회사의 원칙)만 내세우다간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화를 많이 내는 고객에겐 경청이 최우선이고, 논리를 세우는 이들에겐 논리로 설득하는 게 기본이지만 무엇보다 고객의 편에 서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최)하단다. 변신은 향후 고객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카지노에 소속돼 누군가를 카지노로 이끄는 게 마케터의 숙명일진대, 과연 이들은 고객이 돈을 따면 좋을까, 잃으면 좋을까? 전자라면 회사에 누가 되고, 후자라면 지금껏 언급했던 고객에 대한 헌신이 도루묵이 될 테니 대략 난감한 질문이다.

그런데 셋 모두 이구동성이다. "따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고객을 모집하는 일이 편하기 때문"(윤)이란다. 위기를 절묘하게 모면하는 명답이다. "매번 얄밉게 따는 고객은 좀 잃어줬으면 하지만 돈이 궁한 사람은 땄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심정도 드러냈다.

"돈을 따가는 고객은 절대 두렵지 않다, 다만 오지 않는 고객이 두려울 뿐…." 그들의 업무 신조다. 그래서 휴가도, 명절 귀향도 잊은 채 고객을 찾아 다닌다. '카지노의 얼굴'이란 자부심을 훈장으로 여기며.

고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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