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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국은 신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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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국은 신고 중

입력
2009.06.1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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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그 중 하나가 미국인들의 투철한 감시ㆍ신고정신이다.

얼마 전 큰 아들에게 그렇게 조르던 자전거를 사줬다. 300달러나 하는 나름 꽤 비싼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도 안돼 뒷마당에 놔둔 자전거가 없어졌다. 바퀴에 체인까지 채워뒀는데 누군가 번쩍 들고 간 것이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음날 이웃의 미국 할머니한테 물었더니, 대뜸 경찰에 신고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잠시 망설였다. 한국 경찰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한국에서 자전거 도난을 신고한다면 경찰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더욱이 한국에서 자전거 도난을 신고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언제 어디서든 그물망 처럼

할머니의 채근도 있는데다 재발을 막자는 생각에서 전화로 신고했다. 그때는 자전거를 되찾는 것은 95% 이상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불과 1분도 안돼 경찰서에서 전화가 다시 왔다. 자전거가 경찰서에 보관돼 있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어떻게 영문이냐고 물었더니 전날 저녁 자전거가 체인에 묶인 채 풀숲에 방치돼 있다는 신고를 받아 수거해 왔다는 것이었다.

집 뒤에 동네 사람들을 위한 테니스코트와 간이 농구장이 있다. 주민에게 열쇠를 나눠주고 코트를 사용한 뒤에는 자물쇠를 잠그도록 돼 있다. 그런데 어느날 집 문 앞에 주민협의회에서 보낸 쪽지가 와 있었다. 댁의 애들이 언제 몇 시에 열쇠를 잠그지 않고 나왔으며, 그것은 규정 위반이니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자꾸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사용권리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아내한테 쪽지에 적힌 그 시간을 물었더니, 하는 말이 그 때 애들을 잠깐잠깐 지켜봤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깜빡 잊고 열쇠를 잠그지 않은 것을 누가 지켜보고 신고했을까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한인들이 겪었던 웃지 못할 사례도 많다. 이웃동네 한 주부는 서울에서 온 아는 사람이 전철로 볼 일이 있어 그 사람 차를 자기 동네 방문객 주차장에 세워두도록 했는데, 차가 견인됐다고 했다. 누군가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신고한 것이었다. 쇼핑몰 주차장에 몇 시간 차를 세워두고 다른 곳에 볼일이 있어 갔다 돌아와보니 차가 견인됐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미국 사람들의 신고정신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공공시설마다 'suspicious behavior(수상한 행동)'을 신고하라는 안내문이 없는 곳이 없다. 산책길에는 어김없이 눈동자 두개 그려놓고 'neighbor watch' 라고 쓴 팻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런 신고정신은 미국 사회에서는 공동체 의식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름답고 훌륭한 주변 환경, 주변 시설을 향유하려면 그 이전에 이를 지키겠다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 의식이다. 반드시 그런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미국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규정과 룰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이런 신고정신을 어릴 적부터 체득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권리를 위해 지켜야 할 책임

한 지인은 "10년 넘게 미국에 살지만 아직도 내가 미국에 사는지 사회주의 나라에 사는지 모를 때가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소리를 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미국이지만, 그 자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룰을 정확히 지키는 책임감이 전제됐을 때의 얘기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오시는 분들을 위한 팁 하나.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황유석 워싱턴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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