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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제주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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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제주 올레

입력
2009.06.14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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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매체에 소개돼 많이 알려지고 있는 제주 올레 길에 다녀왔다

이미 제주에 매료돼 아예 삶의 터전을 그리로 옮겨간 친구도 있고, 제주의 우도에 매료돼 그곳에서 찍은 영화도 여러 편 있지만, 역시 내 발로 체험한 제주야말로 놀라운 섬이었다.

여행의 패러다임이 많이 바뀌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제주의 올레 길은 정말이지 판타스틱하다는 찬사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제주의 옥토 밭두렁을 걷다 보면 구멍이 숭숭 난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야트막한 돌담길이 이어지고, 한 편으로는 에메럴드빛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러다 보면 또 어느 샌가 야생의 야자수 숲을 지나게 된다.

한창 철인 마늘과 감자를 캐는 제주 어멍, 할멍들과 가벼이 인사도 나누고, 또 한창 철인 성게를 따서 손질하고 있는 자그마한 포구도 지나게 된다. 걷고 또 걷게 만들 수밖에 없으며, 걷지 않으면 만나지거나 볼 수 없는 풍광과 사람들이다.

제주 방언의 이 아름다운 올레는 원래 거리 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말이지만, 제주의 도보 여행을 위한 남제주 일원의 약 320여 km에 해당되는 지역을 12개 코스로 나누어 걸을 수 있도록 한 길들을 이르는 말이다.

프랑스어에 골목길이나 오솔길을 이르는 말로 '알레'라는 단어가 있는데 공연히 두 단어의 연관성을 상상하며, 하멜이라는 네덜란드 사람이 표류했던 적이 있던 제주이니, 아마도 야사에나 기록될 무슨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게 다 제주도가 주는 이국 풍광 때문에 외국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에 호기심이 극대화한 까닭이리라.

20대 시절의 여행은 무조건 많이 보고 많이 느끼려 하는 마음 때문에, 또 일단 돈이 없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이며, 온갖 신경 줄이 다 곤두서 있는 채로 여행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일 때문에 연관된 도시나 관광지를 가게 되고 그저 그런 코스들을 순례하면서 남들과 비슷한 감흥과 정보를 갖게 되는 게 여행의 목적이었던 것 같다.

전 세계 경제 불황의 여파로 해외 여행객이 감소하면서 제주 올레 길은 또 하나의 제주의 관광 상품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상품이라는 말을 썼지만 기존의 제주 여행 패턴과는 경제적으로 많이 다르다.

저가 항공사의 서비스도 좋고, 각 올레 코스 주변에 올레꾼들을 위한 저렴하고 쾌적한 게스트 하우스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또 관광지 밥이 아닌 소박한 먹을거리를 만나게 되는 것도 이 길들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된다. 혼자 걸어도 좋고, 여럿이 걸어도 좋고, 걷는 게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신기한 건 걸으면 걸을수록 사실 아무 생각도 하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코스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몸은 많이 피곤해진다.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어져 그런지 얼굴의 표정은 평소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인들의 병은 아마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 같다.

일주일 정도 휴대폰도 받지 않고 있다가 서울에 오니 주변 사람들이 먼저 얼굴 좋아진 걸 알아본다.

"놀멍 쉬명 걸어보게 마씨! "

어려울 때일수록 돌아가고 쉬어가는 여유를 일부러라도 좀 가져봐야겠다.

이미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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