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의 유식물원을 둘러볼 때였다. 식물원 제일 위쪽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포천의 넓은 들과 포근한 산자락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초록을 좇던 시선은 군데군데 하얀 암벽들에서 여러 번 멈춰야 했다. 푸른 자연에 생겨난 생채기들이다. 포천의 아름다운 화강암인 '포천석'을 캐낸 뒤 방치된 폐채석장들이다.
포천석은 그 질과 양, 그리고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각광을 받았다. 1960년대부터 포천의 여기저기서 엄청난 양의 돌들이 실려 나갔다. 바위산들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처를 떠안아야 했다. 경제성 있는 돌들을 거의 다 캐낸 뒤에야 채석장의 발파 소리는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경기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독곡마을 위 폐채석장도 그 중 하나다. '아트밸리'란 새 이름을 단 이곳을 마주한 첫 느낌은 중국 유명 관광지의 장대한 협곡에 선 느낌이다. 깎아지른 벼랑이 호리병 형상의 청록색 맑은 호수를 감싸 안은 것이, 두 손으로 푸른 보석을 감싸 쥔 모양이다.
돌덩이가 뚝뚝 떨어져 나간 자국이 선명한 암벽의 높이는 50여m. 맑은 호수는 수면에 바위 그림자를 데칼코마니로 그려낸다. 정을 맞고 떨어져 나갔을 때는 한껏 날이 선 빛으로 반짝였을 바위 속살에도 어느덧 거뭇한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았다.
자연의 기암처럼 자연스럽게 퇴색했다. 고요한 적막만 감도는 호수의 넓이는 7,040㎡, 깊이는 20m를 넘는단다. 깊숙하게 파낸 돌 구덩이에 자연스레 물이 고여 형성된 호수다. 물 속을 자세히 보니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유영한다. 버들치, 가재 등이 사는 1급수의 맑은 물이다.
인간이 망가뜨린 공간을 자연이 말끔히 정화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폐허에서 피워낸 절경이고 파괴를 딛고 선 아름다움이다.
10년 전쯤 채석 작업이 끝났고, 폐채석장은 몇 년간 그대로 방치됐다. 포천시는 방치된 폐채석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고민했다. 깎아지른 벼랑에 큰바위 얼굴 같은 암각화를 새겨 넣는 것은 어떨까 하는 머릿속 생각만 가지고 현장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채석장에 물이 고여 바위와 호수가 빚어낸 '선경'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패채석장 개발 계획은 문화공간으로 꾸미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협곡 앞쪽에 호수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세웠고, 협곡 안쪽에는 각종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깎아지른 벼랑은 훌륭한 앰프이자 스피커다. 바위 벽에 부딪는 소리는 서로 어우러져지며 증폭돼 협곡을 타고 공중으로 퍼져 오른다.
아트밸리는 10월 완성을 목표로 지금도 공사 중이다. 조각공원도 생겨나고, 오르막 진입로에 모노레일도 설치될 것이다. 아직 특별한 전시품도 없고 편의시설도 부족하지만 알음알음 찾는 이들이 많다.
내년부터 아트밸리가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린다는 보도 이후 더 많은 이들이 연락을 해온다고 한다. 고요한 바위 호수의 적막을 느끼기엔 본격 관광지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인 지금이 좋다. 포천시청 문화체육과 아트밸리팀 (031)538-3481
포천=글·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포천 식물원 5곳, 흐드러진 꽃향기에 발걸음 멈추는…
포천은 언제나 꽃향기가 그윽하다. 예쁜 꽃들이 피고 지는 커다란 식물원이 국립수목원을 포함해 5개나 들어서 있다. 고산식물이 고운 평강식물원, 색색의 허브 향이 진동하는 허브아일랜드, 아이리스 전문 유식물원과 6월이면 양귀비꽃이 가득 들을 덮는 뷰식물원 등 포천의 식물원들은 제각각 특징을 가지고 있어 방문객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춰 골라 방문할 수 있다.
● 허브아일랜드
포천의 식물원 중에서 가장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곳이다. 13만3,000㎡ 부지에 실내 식물원과 야외정원, 허브박물관 등을 갖추고 있다.
식물원 전체가 울긋불긋 꽃으로 화사하다. 전체가 아름다운 색으로 꽉 차 있는 느낌이다. 실내 식물원에 들어서면 전세계의 다양한 허브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잎들을 손으로 스치면 독특한 허브의 향들이 손끝에 밴다. 다양한 허브향을 만끽하다 보면 머리가 상쾌해진다.
허브아일랜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정원에는 동물농장과 스낵코너가 있다. 각종 허브상품을 파는 향기가게에선 의자안마기와 허브찜질팩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200여종의 신선한 허브빵을 살 수 있는 허브빵가게와 꽃비빔밥 등을 먹을 수 있는 허브레스토랑 등도 있다. 입장료 성인 3,000원, 4세~중학생 2,000원. www.herbisland.co.kr (031)535-6494
● 유식물원
허브아일랜드와 가깝다. 20만㎡ 부지의 이 식물원은 아이리스를 중심으로 20여 가지의 테마를 두고 있다. 아쉽게도 식물원을 가득 메웠던 아이리스는 거의 다 졌다. 대신 꽃창포가 이제 막 꽃을 피울 태세다.
식물원은 탱고의 정원, 핑크벨 레스토랑, 아열대온실, 산딸나무숲, 서머왈츠, 암석원, 전망대 등으로 꾸며져 있다. 서머왈츠는 같은 이름의 아이리스꽃 모양으로 화단을 꾸민 곳으로 아기자기한 눈맛을 선사한다. 유식물원의 유상혁 대표는 꽃 가꾸기와 함께 램프 수집이 취미다.
그가 전 세계에서 수집한 램프는 1,000점이 넘는다. 이 램프들을 한 자리에 모은 등잔전시관이 곧 문을 열 예정이다. 현재는 핑크벨 레스토랑 건물의 2층에서 램프 일부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식물원 입구 입장료 성인 5,000원, 중고생 4,000원, 어린이 3,000원. www.yoogarden.com (031)536-9922
● 평강식물원
산정호수 아래에 위치한 식물원이다. 백두산ㆍ한라산ㆍ히말라야ㆍ로키ㆍ안데스ㆍ알프스 등 세계 고산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을 주로 키워 전시하는 곳으로, 1,000여종의 고산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고산식물이 주로 심어져 있는 암석원과 수련들을 모은 연못정원, 나무 관찰로를 따라 자연 생태를 체험하는 습지원 등으로 꾸며져 있다. 식물원 안에는 약선레스토랑인 엘름이 있다. 식물원 대표는 서울에서 평강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다.
이 원장이 추천하는 약재로 만든 음식을 내놓는다. 평강식물원에선 28일까지 양치식물 전시회가 열린다. 고사리 등 음지식물 100여 종을 볼 수 있다. 입장료 어른 5,000원, 학생 4,000원. www.peacelandkorea.com (031)531-7751
● 뷰식물원
희귀식물 보존보다는 예쁜 꽃밭 조성을 우선으로 하는 식물원이다. 뷰식물원의 대표 작물은 양귀비꽃으로, 지금이 한창 절정이다. 새빨간 양귀비꽃이 너른 들판을 가득 메운 채 바람에 살랑이고 있다. 28일까지 식물원 전역에서 양귀비 축제가 벌어진다.
양귀비가 지고 나면 7~9월 코스모스가 그 벌판을 가득 메우고, 다시 10~11월에는 국화가 가을을 수놓는다. 겨울을 지내고 봄이 찾아오면 4~5월 튤립이 화사한 꽃 카페트를 깐다.
이밖에 구근정원, 락가든, 습지원, 무지개언덕 등이 6만6,200㎡의 식물원 부지를 채우고 있다. 식물원 안의 식당에서는 양귀비비빔밥, 양귀비보쌈 등 양귀비를 재료로 한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입장료 어른 4,000원, 어린이 3,000원. www.viewgarden.co.kr (031)534-1136
● 국립수목원
국립수목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에서 가장 좋은 숲이지만 입장에 제한이 많다. 화~토요일만 들어갈 수 있고 미리 인터넷(www.kna.go.kr)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일요일과 월요일, 공휴일엔 개방하지 않는다. 입장 가능한 날도 하루 3차례로 탐방 시간이 정해져 있다. 1회 100명까지 선착순으로 받는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포천=글·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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