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이 풀린 탓일까. 아님 한국경제만 잘 나가는 덕일까.
북핵 사태 등 대형 지정학적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국물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대환영을 받는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사실 작년 말이나 지금이나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 자체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상황.
2분기 들어 약간의 경기 회복 징후가 감지될 뿐, 그렇다고 "경기 바닥을 확인했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상태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북핵 사태, 정국 혼란 등 악재만 가득하다.
그런데 왜 외국인들은 한국 채권에 적극 투자하고, 왜 한국 주식을 지속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일까. 정말 '코리아 프리미엄'이 위용을 떨치고 있는 것일까.
■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런 변화를 모두 한국만의 현상으로 보긴 힘들다. 무엇보다 꽁꽁 얼어붙었던 글로벌 금융시장이 조금씩 녹기 시작하면서 한국물 뿐 아니라 전체 거래가 늘고있는 덕이 크다. 특히나 이번 위기 극복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대폭 풀린 돈(유동성)의 위력도 분명 한 몫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의 신용 위험도를 보여주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을 회복했다지만, 다른 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일 현재 말레이시아 5년물 국채의 CDS 프리미엄은 1.055%포인트. 작년 10월 고점(5.2%포인트)에 비해서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물론,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기 전인 작년 8월말 수준(1.265%포인트)보다 더 낮아졌다.
CDS 프리미엄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 신용 위험도가 적다는 의미. 태국 역시 CDS 프리미엄이 1.091%포인트로 금융위기 이전(1.35%포인트)보다 더 낮아졌다. 우리나라가 오를 때 더 많이 오르고 내릴 때 더 많이 내린 것일 뿐, 유독 한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이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방증이다.
최근 발행된 한국물이 대부분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거나 정부와 동일한 신용등급을 가진 공기업이 발행한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기업 채권은 정부와 등급이 같으면서도 가산금리가 높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물이라고 해서 모두 국제시장에서 통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 코리아 프리미엄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채권발행성공을 평가절하해선 곤란하다.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한국경제를 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은 분명 달라졌다. 올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외지급 능력 등에 대해 온갖 의혹을 떨치지 못하던 그들이 객관적으로 한국 경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 자체가 달라졌다고 보긴 힘들다"면서 "외국인들의 과도했던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그동안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했던 한국물을 더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빠른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경기선행지수(CLI)에서도 한국은 3개월 연속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의 회복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실물경제 회복이 주요국 중에서 가장 빠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에 대한 투자 심리가 적극적으로 되살아나는 분위기"라며 "과거의 학습 효과 등으로 북핵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당장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변덕'스럽다. 지난해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 경험했듯, 상황변화에 따라 외국인들의 태도는 언제 일순간에 돌변할 지 모른다.
정부 관계자는 "동유럽 등지의 상황이 추가적으로 악화되고 남북간 국지전이 펼쳐지는 등의 대내외 악재가 불거지는 경우 언제든 외국인들은 등을 돌릴 수 있다"며 "미리미리 달러를 조달하는 등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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