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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보는 한국일보 55년/ 한국일보 '왜곡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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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보는 한국일보 55년/ 한국일보 '왜곡의 기록들'

입력
2009.06.0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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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筆의 과거' 참회하며 가슴 깊이 아로새긴 민주언론 정신

한국일보의 55년 역사는 굴곡 많았던 우리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해 왔다. 그동안 한국일보는 사시(社是)에 밝힌 대로 춘추필법의 정신으로 정정당당하고 불편부당하게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독재권력에 굴복해 진실을 알리고 기록해야할 임무를 저버린 때도 있었다.

특히 격동의 시기였던 1979~80년 한국일보의 지면에는 굴종과 치욕의 과거가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남아 있다. 이 참담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다시는 그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이후 12월 8일 유신 말기를 상징하던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됐다. 한국일보는 12월 9일자 사설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다. "비록 긴급조치 9호하의 엄중한 제약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론 본연의 사명에 비추어 제 구실을 하지 못했음을… 참회하고… 오늘의 깊은 반성을 반드시 전향적인 분발에 연결시킬 것임을 약속한다."

그러나 이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어진 12·12 군부 쿠데타와 군부의 정권장악·칼보다 강해야 할 펜이 칼에 무참히 꺾였다. 한국일보는 국민들에게 사태의 진상을 전혀 알리지 못했다.

이듬해인 1980년 봄 전국 대학가에서 들불처럼 번진 민주화 요구 시위. 한국일보는 "시민들은 과격학생 시위가 몰고 올 사회혼란과 경제마비를 한결같이 걱정"(5월 15일자) 등의 보도를 통해 사태의 본질을 왜곡했다.

진실 외면과 왜곡의 절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특히 계엄군이 광주에 진입, 도청을 지키던 시민들을 유혈진압한 사실을 전한 5월 28일자 사설은 "울고 싶은 심정이지만 치안회복이 시급한 명제였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라고 썼다.

6월 1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 자문기관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의 상임위원장자격으로 등장하자, 3일자 사설은 "정부의 기능 및 역할을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다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말해 국보위를 국정 최고 기관으로 인정해 주었다.

이후에도 한국일보는 노골적인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8월 27일 전두환 대통령이 11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사설에서 "전 대통령의 국정지도이념은… 단시일 내 구현될 바 아닌 데다가 내외난제 중첩기에 '영도자의 공백'이란 있을 수 없다"고 밝혀, 이듬해 있을 개헌후선거에서 그가 12대 대통령까지 맡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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